지난 10월에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 재현’ 행사가 8(토)일에 서울 창덕궁에서 출발해 이튿날인 9(일)일 수원화성에서 그 성대한 막을 내렸다. 행사 둘째 날 취재길에 둘러본 ‘노송길’(노송지대)은 솔향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가 지나던 발길을 멈추게 하고, 다시 찾고 싶은 길이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있는 노송지대는 지지대비(遲遲臺碑)가 있는 지지대고개 정상에서부터 옛 경수간(京水間) 국도를 따라 오래된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약 5km의 지대이다. 이 노송길에는 정조(1776-1800)의 깊은 효심과 사도세자(1735-1762)의 아픈 역사가 서려있다. 정조 대왕은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성군에 있는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현륭원은 융릉(隆陵)으로 승격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 2월에 이곳으로 오는 길을 따라 소나무를 심게 했는데, 그때의 소나무 가로수가 남아 노송지대를 이룬다. 당시에 심은 소나무는 모두 500주이며, 수양버들이 40주였다고 한다. 지지대에서 화성까지 이어지던 울창한 소나무들은 지금은 오랜 세월과 공해로 고사(枯死)하고 노송 100여주만 남았다고 한다.

▲ 노송지대:1973년 7월 10일 경기도기념물 제 19호로 지정

노송지대 안내표지판을 지나 바로 위쪽으로는 조선 중기에 세워진 미륵당(彌勒堂)이 있다. 미륵부처라 불리는 석불 입상을 보호하고 있는 이 건물은 1960년 보수‧증축을 후 법화당(法華堂)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방 3.1m의 벽돌 건물 안에는 예부터 마을의 평안을 빌기 위해 모셔진 화강암 석불 입상이 모셔져 있다. 몸체 일부는 지하에 묻혀 있고 높이가 2.49m, 가슴 폭 1.07m, 얼굴 길이는 1.14m라고 한다.

 

▲ 법화당

법화당을 지나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괴목정교(槐木亭橋)가 나온다. 이 다리는 근처 정자의 이름인 괴목정(槐木亭)을 따라 괴목정교라 했다고 한다. ‘한냥골’ 이라고도 불렸던 이곳은 괴목정교가 세워지기 전 통행세를 받는 사람이 있었는데, 3명이 이틀에 한번 꼴로 한 냥의 통행세를 받았고, 당시 그렇게 받은 돈은 파장동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또한 괴목정에는 정조가 수원 현륭원 원행길의 이정표로 세운 18기의 표석 중 하나인 괴목정교 표석(수원시 향토유적 제 16호)이 있었는데 현재 수원 역사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

▲ 괴목정교
이 괴목정교를 건너면 고목이 된 플라타너스(platanus) 가로수길이 나타난다. 이 옛 가로수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지지대(遲遲臺) 고개가 나온다. 지지대고개는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과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영동고속도로의 북수원 나들목이 연결되어 있다. 지지대 고개 이름의 유래에서는 다시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사근현(沙近峴)이라 불리던 이곳을 정조가 '미륵현', 그 후에 다시 '지지현(遲遲峴)'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때 느릴 지(遲)자를 두 번 붙인 '지지'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 참배 후 돌아갈 때 이 고개를 지나면 능이 보이지 않게 되어, 아쉬워하며 이곳에서 한참 지체하여 대왕의 행차가 늦어지는 곳이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지지대고개의 정상에 1807년 화성의 어사 신현(申絢)이 비석을 세웠고, 이 지지대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24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이 같은 정조의 효심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 1993년에는 지지대 고개 주변에 효행공원을 조성하였다.
다시 이 길의 시작인 노송지대로 돌아가 보자. 노송들이 남아있는 ‘노송길’ 지대를 지금은 노송공원으로 명명하고 가로수 울창하던 옛 모습으로 복원 중에 있다.

▲ 노송공원

괴목교 위로는 너저분하게 크고 작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든다. 앞으로 깨끗한 공원으로 정비하여 수원시민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한번 방문하여 정조대왕의 효심도 그려보고 쉬어도 가는 곳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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