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酉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삶을 지키기 위한 원초적 본능으로 신앙미술을 창조했고 생활문화나 종교, 관념 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의미를 띠고 있는 동물상징을 많이 사용했다. 동물들은 원시시대 이래 인간에게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먹을거리이기도 했다. 그 힘은 노동력으로도 이용되면서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한반도에서도 바위그림이나 동물벽화를 비롯해 토우, 토기, 고분벽화 등에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동물이 가진 강한 힘과 거대함은 그 동물이 주는 재해나 위험 등에 대하여 공포감과 범상치 않는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심리적 동기가 ‘무서운 존재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또는 지킴이의 동물신 으로까지 인식하게 된다.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고 한 세계와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영매 열두 동물을 통해 신성에 다가가고자 했다.

양우리 풍속에서는 닭이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兆)로 여겨져 왔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으로 받아들여졌다. 닭이 주력(呪力)을 갖는다는 전통적 신앙도 그 여명을 하는 주력 때문일 것이다.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민간신앙에서는 믿고 있었다.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을 지녔다고 흔히 칭송된다.

즉 닭의 벼슬(冠)은 문(文)을, 발톱은 무(武)를 나타내며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며, 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추어 울어서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라 했다. 닭이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의 상징적 존재로서 나타나게 된 것은 삼국유사에서 혁거세와 김알지의 신라 건국 신화에서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에 의하면 알영이나 김알지 같은 나라 임금이나 왕후가 나타날 때 서조(瑞兆)를 미리 보여주는 길조(吉鳥)로 표현이 되었다.

문헌 기록뿐만 아니라 천마총의 달걀 껍질이나 지산동 고분의 닭뼈, 백제 고배 속의 달걀 껍질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은 일찍부터 중요한 제물이 되었다.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 단지 안에 수십 개의 계란이 들어 있었고 또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 닭뼈가 발견된다. 능속에 계란과 닭뼈가 들어 있었던 것은 저 세상에 가서 먹으라는 부장 식량일 수도 있고, 알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이 재생, 부활의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닭은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닭은 여명, 빛의 도래를 예고하기에 태양의 새이다.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시보의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의 능력이 있기도 하다. 장탉이 홰를 길게 세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의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 왔다.

닭은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에서 손(巽)에 해당하고, 손의 방위는 남동쪽으로,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래서 닭은 새벽을 알려주는 상서로운 동물, 신비로운 영물로 간주한다. 닭이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생활하는 존재 양상의 이중성은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시계가 없던 시절의 밤이나 흐린 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았다. 특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닭의 울음소리를 기준으로 하여 뫼를 짓고 제사를 거행했다. 수탉은 정확한 시간에 울었으므로, 그 울음소리를 듣고 밤이 깊었는지 날이 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제때에 울지 않거나, 울 시각이 아닌데 닭이 울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한다. 초저녁에 닭이 울면 재수가 없고, 오밤중에 울면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해진 뒤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속담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암탉이 울어 날샌 일 없다"라는 속담이나 "암탉이 울어서 날샌 일 없고, 장탉이 울어서 날 안 새는 일 없다"는 속담은 암탉을 여자에 비유하여 잘못된 닭 울음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닭은 동이 틀 때 횃돼에 올라가 새날이 옴을 예고하고, 밤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와 함께 새벽이 오고 어둠이 끝나며, 밤을 지배하던 마귀나 유령도 물러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여러 풍속에서 보면 닭소리를 귀신이 무서워한다고 여기고 있다. 닭 울음소리는 빛의 전령으로 태양을 부르고 사람을 기동하게 하는 것으로 밤중에 횡행하던 도깨비 같은 귀신들은 그 소리만 들으면 자취를 감춘다. 닭은 새벽을 고하고 새벽은 빛으로서 악정령(惡精靈)을 쫓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닭은 인간에게 질병과 재앙을 주는 귀신들을 능히 압제하는 능력이 있는 상서로운 동물로 숭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축귀와 벽사의 동물로 닭을 상정하고 닭 그림, 닭 피, 닭 등으로 사용하는 풍속이 많다. 옛날 사람들은 귀신들이 닭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였고, 이 생각을 바탕으로 악귀와 모든 액을 물리치는 주술로서 사람들과 같이 귀신들이 출입하는 대문에 닭, 닭그림, 닭 피, 죽은 닭 등을 사용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새해를 맞이한 각 가정에서는 닭이나 호랑이, 용을 그린 세화[鷄虎畵]를 벽에 붙여 액이 물러나기를 비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닭은 귀신을 쫓아내는 축귀와 액을 막는 제액초복의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궁합에서 닭띠와 소띠는 잘 어울리고 범띠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그 동물의 행태로서 닭, 소, 호랑이의 관계를 그대로 인생사에 결합한 것이다.

장닭이 홰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귀신과 호랑이도 민가에서 물러간다고 한다. 호랑이는 닭이 우는소리를 무척 싫어한다. 닭(酉)은 서방(西方)이고 서쪽은 흰색(白)이므로 호랑이는 흰색을 또한 두려워한다고 한다. 반면에 소는 닭의 울음소리를 좋아하고, 여물을 먹은 후 반추위로 되새김을 하면서 "꼬끼오"하고 우는 닭의 울음소리에 맞추어 반추위 운동과 쉼을 한다고 한다. 민가에서 닭둥우리를 소마구간과 같이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닭띠와 범띠가 혼인을 하면 잘되지 않고, 소띠와는 잘 맞는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순전히 닭과 호랑이의 생태에 따라서 해석한 것이다.

닭 그림은 정초(正初) 벽사를 위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자손중다(子孫衆多)를 상징하는 그림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의 그림을 걸었다. 닭은 입신출세(立身出世)와 부귀공명(富貴功名)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즉 닭이 머리 위에 볏을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관(冠)을 썼다고 하였다. 관을 쓴다는 것은 학문적 정상의 표시이며, 벼슬을 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또 닭과 함께 맨드라미를 같이 그리는데, 이는 "冠上加冠"이라 하여 입신출세를 위한 길상적, 상징적 표현이었다. 맨드라미 역시 그 모양에서 유추된 닭이 볏과 같은 의미이다. 말 그대로 관 위에 관을 더한다는 뜻이니 최고의 입신출세를 의미한다. 그리고 부귀와 공명을 바라는 뜻에서 수탉이 길게 우는 모습을 모란과 함께 그렸다. 모란도 부귀를 상징하며, 수탉은 공명을 상징한다.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卞相璧)이 그린 닭 그림은 어미 닭과 열댓 마리의 병아리를 그려 오복의 하나인 자손의 번창을 염원하는 뜻을 상징화하고 있다. 조선 시대 목가구의 경첩에서 장식 문양으로 닭 그림이 나온다, 닭의 그림이 그려진 술잔 계이(鷄彛)는 종묘 제사의 강신의례(降神儀禮) 때에 쓰이는 제기(祭器)이다. 그 잔에 봄에는 정화수, 여름에는 울창주(鬱창酒)를 가득 담아 제를 올린다. 이때 닭은 조상신의 도움으로 천하가 편안하기를 염원하는 인간의 사신(使

臣)이 된다. 결혼식 초례상에는 반드시 닭이 필요하다. 신랑 신부가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서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닭을 청홍 보자기로 싸서 상위에 놓거나, 때로는 동자가 닭을 안고 옆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즉 닭을 놓고, 닭 앞에서 일생의 인연을 맺고 행복을 다짐하는 서약을 하는 것이다. 옛날에 나라 임금끼리 서약을 하고 말피로 맹서했다고 하는데 부부 인연의 서약은 닭으로 맹서하는 것 같다. 혼인의례가 끝나고 신부는 시부모와 친족 일동과의 첫 대면의 폐백례를 드릴 때도 닭고기(鷄肉脯)를 놓고 절을 한다. 혼인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평생 의례인데 이때에 닭이 등장하는 것은 닭을 길조 서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는 대개 닭을 사육하고 있어서 언제든지 필요하면 손쉽게 잡을 수 있다. 새신랑이 처가에 다녀왔다면 인사가 이것이다. "씨암탉 몇 마리 먹고 왔느냐"는 것이다. 귀한 손님이 오면 닭을 잡아 대접하는 관습에서 신랑이 장모한테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가를 헤아리는 말이었다. 장모에게 있어 가장 귀한 손님은 사위이다. 딸을 잘 보살피고 사랑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사위가 오면 장모는 서슴없이 씨암탉이라도 잡아 대접을 한다는 것이다. 씨암탉을 잡으면 병아리를 깔 수 있는 알을 못 낳는데도 사위를 위해서라면 잡아 대접하는 장모의 사랑이었다. 손님으로 가서 그 집의 씨암탉을 얻었다면 최고의 대접인 것이다.

씨암탉이 낳은 계란도 친척의 생일이나, 환갑, 결혼 때 짚으로 달걀 꾸러미에 한 꾸러미를 싸서 부조를 했다. 오늘날처럼 현금을 봉투에 넣어서 내미는 것과는 달기 평소에 가정에서 손수 기르던 닭이나 계란을 선사하는 것이다. 계란을 하루에 하나 밖에 낳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모아 두었다가 10개가 되면 한 꾸러미를 만들었으니, 모으는 마음의 정성 또한 대단했다. 출가한 딸이 근친을 갈 때 친정 부모를 위해 닭을 가지고 갔다. 닭은 정성스런 정의 표시로 활용되었다. 양띠해를 보내고 닭띠 해를 맞이하면서 지난해의 불행은 모두 사라지고 행복만 가득하라는 말 가운데 " 닭이 우니 새해의 복이 오고 개가 짖으니 지난해의 재앙이 사라진다"라는 덕담이 있다. 닭은 보양자(保養子)하고 가족의 보호와 생활권을 위해서 용감하게 투쟁하고 시간의 흐름, 세상의 변화를 판단하는 서조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닭을 영물로 여기고, 설날 첫 아침 식사, 백연가약 혼인 의례의 증인으로, 그리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에 닭을 등장시켰던 것이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序曲)으로 받아 들여졌다.

 

참고자료: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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