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창안, 주거혁신의 선두주자를 찾아서

▲ <사진출처: 예술의 전당>

우리민족의 큰 명절 설 연휴를 이용하여 필자는 ‘4평의 기적’을 실천하였던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 기획전을 찾았다. 현대건축의 아버지이자 화가였던 르 코르뷔지에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된다.

▲ 유니테 다비타시옹 <사진출처 : Google>

요즘 3대 혁신의 주창자로 이동 혁신 헨리포드, 정보 혁신 빌 게이츠, 주거 혁신 르 코르뷔지에를 일컫는바, 르 코르뷔지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아파트)을 창안해 수백만 서민의 거주지를 해결한 장본인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은 르 코르뷔지에 이전과 르 코르뷔지에 이후로 나눈다고 한다.

▲ 롱샹성당 <사진출처 : Google>

근대 건축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인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그리고 화가였다. 또한 르 코르뷔지에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설계한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인 김중업의 스승이기도 하다.  

지난 해 7월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는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프랑스와 일본, 인도 등 7개국에 소재하고 있는 17개 건축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현대 건축가의 건축물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은 현대건축 역사상 세계 최초일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였다.  

유네스코에서는 건축을 통해 20세기 시대적 난제를 극복할 해결책을 제시하고 현대건축으로 세계화를 이끌며 세계인류문명에 큰 공헌한 그의 업적을 인정하여 현대건축 역사상 유례없는 등재를 추진하게 되었다.

'집은 살기위한 기계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란 말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철학을 대표하는 말이다. 근대 건축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그의 명언은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빨리 집을 많이 지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체가 허망하게 잿더미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전쟁으로 집이 없는 사람과 산업혁명으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필요한건 바로 '집'이었다. 저렴하고 작은 공간이지만 사람이 편안하게 지내게 할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한 그는 '최소한의 공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 '편안한 공간'을 창출해낸 것이다.

벽돌과 대리석을 쌓아올린 조적조식 건물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벽체가 아닌 기둥이 바닥판을 지탱하며 벽체의 단절성과 폐쇄성이 아닌 벽체의 연속성과 가변성으로 자유로운 평면을 계획 할 수 있는 ‘돔이노이론’을 주장한다.

* Domus(집) + Innovation(혁신) = Dom-ino (돔이노)   

‘돔이노이론’과 현대건축의 5요소(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 자유로운 파사드)가 적용이 된 빌라 사보아는 당시 매우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고자 설계된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400가구 약 1,600명이 주거 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 였다. 1952년 마르세유에 지어진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물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지난 해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롱샹성당도 코르뷔지에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이다.

'르 코르뷔지에를 존경한 피카소'

필자가 만난 ‘르 코르뷔지에 기획전’에는 건축가 도시계획가와 더불어 화가로 활동한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 그를 존경하고 동경하던 피카소,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김중업 건축가들과 얽힌 일화도 찾아 볼 수 있다.

피카소는 건축이라는 시대적 요구로 세상을 혁명시킨 그에게 경외심을 가졌다. 서민을 위해 지은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에 들른 피카소는 자신의 미술보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이 훨씬 더 진보했음을 눈치 챘다. 스티브 잡스는 평소에 그의 작품인 의자를 장소가 바뀌어도 갖고 다니며 사용할 정도로 애용하였다.‘ 상대성이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르 코르뷔지(Le Corbusier, 1887~1965)에 대하여 "미래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생각이 반드시 승리할 것 입니다." 라고 평하였다.

 또한 시계장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시계 전공이 아닌 건축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를 비롯하여 르 코르뷔지에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르 코르뷔지에의 자화상

'르 코르뷔지에를 거장으로 이끈 습관'

그는 첫 번재 여행 이후 10*17cm 크기의 크로키 수첩을 분신처럼 가지고 다녔다. 80여가지 색깔의 색연필로 메모 ,계산, 명세서를 쓰고 스케치를 하며 수첩을 채워 나갔다. 그는 그렇게 관찰과 사고를 축적해 나갔던 것이다.

한편 전시장 옆 방에서는 건축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츠커상을 1995년에 수상한 일본 건축의 거장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특별 전시장에서 스케치와 모형들도 만날 수 있다.  

▲ 르 코르뷔지에가 사용한 이젤

가난한 권투선수였던 일본의 안도 다다오는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한 르 코르뷔지에의 책 한권으로 건축가의 길을 선택하였고, “독학을 결심한 청년 안도 다다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깊이 이해하는 것 밖에 없었다.”

전시물에서는 일본의 대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르 코르뷔지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 관한 동영상, 그림, 작품들을 진지하게 감상하고 어린들을 위한 특별 해설도 진행되고 있었다.

건축에 전혀 문외한인 필자에게 모처럼 청량감을 주는 뜻깊은 전시회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 본 전시회는 사진 촬영은 금지되었으나 휴대폰 촬영은 허용하고 있음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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