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환 선생, 출처: 위키트리

호국의 달을 맞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독립 운동가 김용환 선생(1887~1946)의 일대기가 소개 되어 잔잔한 감동이 일고 있다.

선생은 퇴계 이황 선생의 수제자 였던 영남 학파의 거두 학봉 김성일 선생의 13대 손으로 1846년 7월 10일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셨으며, 청년시절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명문가의 자제로써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조국 광복을 위해 파락호(破落戶)의 삶을 살았던 분이다.

김용환 선생은 일생을 천하의 난봉꾼으로, 조선에서 손꼽히는 노름꾼으로 살았다. 양반집 자손임에도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으로 살았던 것은 그가 일제의 눈을 피해 광복을 위한 군자금을 대기 위한 것이었고, 또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 가족들이 고초를 겪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특히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시집갈 때 시집에서 받은 돈을 독립자금으로 사용하고 정작 딸은 어머니가 쓰시던 헌 농을 가지고 가게 되어 시집의 눈총을 받았다고 하니, 선생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러한 선생의 조국사랑 이야기는 선생의 정부가 뒤늦게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이젠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묻는 오랜 친구의 질문에 “선비로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 아무런 말을 하지 말게.”라고 부탁하였다니 범인으로서 감격할 수밖에 없다.

적은 것 하나 가지고 공과를 다투고 남의 것을 가지고라도 제 공으로 앞세우는 오늘 날의 정치인들과 비교되는 삶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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