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지난 4일(화)11:00에 한글의 무한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문화를 열어가는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철민)을 탐방했다.

국립한글박물관 김철민 관장은 “인류의 문명은 문자의 역사와 맞물려 발전하고, 다양한 한글문화가 지닌 창조와 소통의 가치는 우리문화의 근간이며, 스토리가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은 대한민국의 미래문화를 열어가는 곳이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인사말을 전했다.

국립한글박물관 시설은 1층은 한글누리(한글정보실), 강의실, 사무동이 있고, 2층에는 상설전시실(한글이 걸어온 길), 아름누리(기념품 점, 카페)가 있으며, 3층에는 한글놀이터(어린이 체험실), 한글 배움터(외국인 체험실), 특별전시실이 있다.

▲ 2층 상설전시실에서

2층 상설전시실에는 “한글의 지나온 역사를 실물자료 중심으로 재조명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오늘날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 한글문학의 다양성과 문자로서의 미래를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곳이기도 하다. 1443년 창제 이후 오늘까지 한글이 걸어온 길을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찬찬히 되짚어보는 한글이 걸어 온 길”이 마련되어 있다.

한글이 없던 시대의 문자: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는 한자의 음이나 뜻을 활용하여 우리말을 쓰고 읽었는데 이것을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이다. 초기에는 지명이나 인명 등의 고유명사를 적는데 차자 표기를 사용했지만 이후에 이두, 향찰, 구결 등이 만들어지면서 하나의 어휘를 넘어 문장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2층 상설전시실 “한글이 걸어 온 길”에는

1부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 1443년(세종 25년) 한글이‘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창제되었다.

2부 쉽게 익혀서 편히 쓰니 – 한글은 교육, 종교, 예술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점차 폭넓게 쓰이게 되었다.

3부 세상에 널리 퍼져 나아가니 – 1894년 한글은 조선의 공식 문자로 선언되었다. 1907년에 는 한글을 연구하는 국립 기관인‘국문연구소’가 설립되어 우리말을 본격적으로 연구 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한글 연구는 물론이고 우리 말과 한글의 사용까지도 금지 당하게 되었다.

한글, 우리말의 그릇 - 한글이 간직해 온 옛 우리말

* 고유명사 표기: 추모(芻牟) -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  홀본(忽本) - 고구려의
               초기 수도인 졸본

* 이두(吏讀): 이두는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우리말의 어순대로 문장을 표기한 것이 다. 초기의 차자표기가 단순히 고유명사 표기에 머물렀던 반면 이두는 우리말 문장 전체 를 표기할 수 있었다.이두표기는 주로 행정용 문서를 비롯한 실용문에 많이 사용되었다.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은 이두 표기의 초기 형태 자료인데, 신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두 사람의 다짐이 새겨져 있다. 이 자료에서 ‘하늘 앞에서’를 뜻하는 ‘천전(天前)’은 한문 식으로 표현하면 ‘전천(前天)’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 말 어순에 따라 '천전(天前)’으로 적었다.

壬申年 六月 十六日 二人/ 임신년 6월 16일 두 사람이, 幷 誓 記 /함께 서약해 기록한다. 天 前 誓 / 하늘 앞에 맹세한다.

* 향찰(鄕札): 향찰은 우리 말 그대로를 표현하려 한 차자 표기법으로, 우리말의 문법 요소 뿐 아니라 어휘까지도 한자를 빌려 나타냈다. 향찰은 시가(詩歌)의 일종인 향가(鄕歌)를 적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향찰 표기의 대표적인 예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서동요<신라>’이다. 아래 서동요의 문장에서 ‘은(隱), 량(良), 고(古), 을(乙), 의 (矣), 견(遣), 여(如)’는 모두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를 나타낸 것이다. ‘선화공주(善花 公主)’에서 두 번의 ‘주(主)’가 나오는 데 첫 번 째 ‘주(主)’는 한자의 음을 빌려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주’를, 두 번째 ‘주(主)’는 한자의 뜻을 빌려 ‘님’을 적은 것이다.

* 구결(口訣): 구결은 한문을 읽을 때 편리하게 하거나 한문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한자를 이용하여 조사나 어미 등을 끼워 넣은 것을 말한다. 구결은 음독구결과 석독구결로 나뉜다. 음독구결은 한자를 음으로 읽으면서 중간에 우리말 조사나 어미만 넣 어서 읽는다. 석독구결은 한자의 뜻에 맞춰 우리말로 풀어 읽는다. 표기에 사용한 구결은 한자 획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변형하였다. 석독구결을 사용한 대표적인 자료는 불경의 하 나인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이다.

▲ 훈민정음 해례본 : 이 책은 1962년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세종 임금의 명으로 정인지 등이 한글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설명하고 예를 든 책.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늘날 한글의 자화상

1443년 겨울, 온통 한자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한글이 태어났다. 그 후 수백 년의 세월을 거치며 한글은 우리 삶 깊숙이 자리하였고, 이제는 한글이 우리 민족의 얼굴이 되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글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글이 지닌 과학성과 예술성에 자부심을 품는 것이다. 한글을 세계 널리 전파하려는 노력도 그러한 자부심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생활에서는 다른 나라의 문자에 비해 한글이 홀대 받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옷이나 생활용품, 거리에 내걸린 간판 등에서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로마자는 한글이 놓인 현실이 어떠한지 말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만나는 흔한 일상 속에서 ‘오늘날 한글의 자화상’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만일 우리말을 오롯이 담아내는 한글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한글이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알려진 홍보와 보고서의 내용이다.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완전한 글자”John Ross(1842 ~ 1915) 영국선교본부에 보낸 보고서(1883)

“세종의 한글 창제는 인류사의 빛나는 업적”Homer Hulbert(1863 ~ 1949) 한글(1892)

“전적으로 독창적이고 놀라운 음소문자, 세계 어떤 나라의 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계” Edwin Reischaurer(1910 ~ 1990)동아시아 위대한 전통(1960)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문자를 발명하였다.”Frits Vos(1918 ~ 2000)Korean Writing: IDU and Hangul(1964)

“지난 20여 년 동안 해마다 한글날을 기념하고 있다. 세계 언어계가 한글날을 찬양하고 공휴일로 기념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James McCawley(1938 ~ 1999) 맥콜리의 제자 바바라 니드의 회고.(1999)

세계에서 자신만의 문자로 문화를 창조한 나라는 많지 않다. 한글은 기록이 남아있는 문자로 창제자, 창제시기,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한글에 관련된 세계 언어학자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매우 독특하고 배우기 쉬운 문자라고 말한다. 또 우리나라말인 한국어가 표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문자다. 세종대왕의 고마움을 기억하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한글의 소중함을 널리 알려 한글문화의 가치를 공유하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 한글자료 기증 ⸱ 기탁 안내: 기증 문의 : 02-2124-6378

* 국립한글박물관 이용안내: 02-2124-6200, 02-2124-6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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