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 기회전 홍보

지난 4일(화)11:00에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철민)을 탐방했다.
한글의 무한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문화를 열어가고 한글의 진면목을 확인해 보는 기획 특별전“순간의 풍경들,『청구영언』한글 노랫말 이야기”를 살펴보는 3층 기획전시실(2017. 4. 28 ~ 2017. 9. 3)을 찾기 위해서이다.

“김천택(金天澤, ? ~ ?)이 편찬한 『청구영언(靑丘永言)』은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가곡 노랫말 책이다. ‘가곡(歌曲)’은 조선시대 사대부 계층이 즐긴 성악곡의 한 종류이다. 『청구영언』에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가곡의 노랫말 580수가 한글로 실려 있다. 김천택은 구전되던 노래가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겨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고려 말부터 『청구영언』이 편찬된 1728년까지 당대 애창되던 가곡의 노랫말을 수집하고 바로 잡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청구영언』 원본을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이자 처음 시도되는 가곡 노랫말 전시이다. 『청구영언』원본은 1948년 조선진서간행회에서 발행한 ‘김천택 편 『청구영언』’으로 그 존재가 확인되었을 뿐 실물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전시회측은 전했다.

▲ 특별기획전 7월의 주제 - 홍보

* 우리 고유의 정형시, 가곡과 시조

전통 성악곡인 가곡의 노랫말은 3장 12음보로 된 우리 고유의 정형시이다. 이러한 기본 형식을 갖춘 정형시를 조선시대에는 ‘가곡창’이나 ‘시조창’의 방식으로 노래하였다.

초장 - 동창이 / 밝았느냐 / 노고 지리 / 우거진다
중장 - 소칠 / 아이는 / 여태 아니 / 일었느냐
종장 - 재 넘어 / 사래 긴 밭을 / 언제 갈려 / 하느냐 (1 ~12)

오늘날 이 노랫말을 가곡이 아닌 ‘시조’라고 일컫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조는 ‘지금 이 시대의 노래’라는 뜻의 ‘시절가조(時節歌調)’를 줄인 말이다. 원래 시조는 18세기 중반부터 유행한 새로운 곡조의 노래를 예부터 불린 가곡과 구분하여 가리키는 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조선후기에 시조는 음악곡조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김천택이 1728년 『청구영언』에 실은 노랫말은 가곡의 노랫말이었다. ‘시조’라는 용어는 20세기 초부터 가곡과 시조의 노랫말이 시(詩)로 인식되어 문학 분야의 한 장르가 되면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시조’는 문학 분야에서는 가곡과 시조의 노랫말을 모두 가리키며, 음악 분야에서는 ‘시조 시’라 하여 ‘시조창’, ‘가곡창’ 과 구분되는 노랫말을 가리킨다.

▲ 청구영언을 편찬한 '김천택'이 바라 본 세상

1부는 삶의 순간을 노래하다 - 김천택은 살들의 입을 통해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거나 개인 문집에 실린 노랫말 580수를 한데 모아 책으로 만들고 『청구영언』이라하였다. ‘청구’는‘우리나라’, ‘영인’은 ‘노래를 뜻한다.’는 뜻이다. 김천택은 인간의 감정과 본능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한 노랫말이야말로 ‘자연의 참된 모습’이라 생각하였다. 당시 음란하고 저속하다고 평가받던 시정의 노래들도 버리지 않고 모아서 『만횡청류(蔓橫淸流)』라고 이름을 짓고 총 116수를 『청구영언』에 실었다. ‘만횡청류’는 능청능청 부르는 노래들을 모은 악곡이라는 뜻이다.

『청구영언』, 『만횡청류(蔓橫淸流)』544번 노랫말에서 <남산에 올라 한양 윤곽을 둘러보니>

17세기 후반부터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고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도시의 성격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에 한양은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물자와 상품의 교류가 활발한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당대 집권 세력이나 사대부들은 예술 활동을 후원하며 새로운 경향의 예술을 받아 들였고 직접 창작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여항인((閭巷人)들은 사대부와 함께 풍류문화를 주도하였고 자신들의 관심과 감성을 음악, 회화, 서예 등과 같은 예술분야에 담아냈다.

『만횡청류』의 노랫말은 조선 후기 한양의 시정(市井)풍경과 도시적 정서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집안 이야기’는 물론이고‘물건을 흥정하는 번화한 저잣거리’와‘도시의 여가와 취미’까지도 녹아 있다. 특히 신윤복의 풍속화 장면을 그대로 옮긴 듯한 ‘시정 뒷골목의 분위기’와 ‘음주가무를 즐기는 향락과 유흥’도 드러나 있다.

2부는 세상 노래를 모으고 전하니 –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가곡 노랫말 모음집『청구영언』은 우리 노랫말의 원형을 담고 있는 점에서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의와 가치를 가진다. 『청구영언』의 편찬으로 우리말 노래를 쉽게 익히고 전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한글 노랫말의 가치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 청구영언의 구성 형식에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 경기대학교 국문학과 학생의 모습

“『청구영언』의 구성을 살펴보면 악곡을 중심으로 시대별, 인물별, 노랫말 580수를 분류하고 한글로 기록하였다. 시기적으로 고려 말부터 『청구영언』편찬 당시까지, 작가로는 임금과 사대부, 여항인, 기녀, 무명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 ‘악곡(樂曲)’은 음악을 담는 형식으로 우조, 계면조 등의 악조에 속한 개별곡들을 가리킨다. 『청구영언』에 적힌 ‘중대엽(中大葉)’, ‘북전(北殿)’, ‘삭대엽(數大葉)’은 악곡의 종류이다. ‘삭대엽’은 ‘중대엽’에 비해 빠른 속도의 악곡이다. ‘소가곡’은 ‘삭대엽’의 파생곡이다. ‘중대업계’와 ‘북전계’는 『청구영언』이 편찬된 18세기 이전부터 불리던 오래된 노래이며. ‘삭대업계’ 및 ‘소가곡’은 당대의 노래이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만횡청류(蔓橫淸流)』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노랫말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을 다루었다. 김천택은 『만횡청류(蔓橫淸流)』노랫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별도의 항목으로 다루었다.”고 전한다.

▲ 특별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

청구영언 서문에서 – 오늘이 오늘이소서 / 매일이 오늘이소서 / 저물지도 새지도 말으시고/ 새려면 늘 언제나 오늘이소서 –

옛날의 노래는 반드시 시(詩)를 사용했다. 노래를 글로 표현하면 시가 되고 시를 관악기와 현악기에 올리면 노래가 되니 노래와 시는 본디 같은 이치이다.

* 가곡과 시조는 어떻게 다른가?

‘가곡’과 ‘시조’는 같은 노랫말을 써서 노래한다. 음악적인 구성과 연주방식은 차이가 있다. ‘가곡’은 거문고, 대금, 장구 등의 관현 반주에 맞춰 부르는 느린 노래이며 노랫말이 5개의 악절로 나눠진다. ‘시조’는 ‘가곡’에 비해 노래가 빠르고 간단하며 대중적이고 노랫말이 3개의 악절로 나뉘며, 장구 하나만으로도 연주가 가능하다.

3부는 『청구영언』이 전하는 옛이야기 - 『청구영언』의 노랫말 중에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정치적 사건이나 유명 인물들의 일화와 관련된 것들이 있다.

이방원(李芳遠, 1367 ~ 1422, 후에 태종)과 정몽주(鄭夢周, 1337 ~ 1392)가 읊었다는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 고려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진심을 떠보고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읊은 시조로서, 포은이 이에 답한 것이 《단심가(丹心歌)》이다. 《청구영언》에 실려 전하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하여가 [何如歌]》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하리, 우리도 이가치 얼거져 백년(百年)가치누리리라.” 《단심가(丹心歌)》“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외세의 침입에서 나라를 지킨 무인(武人)의 노랫말 등이 있다. 또한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진 이항복(李恒福, 1556 ~ 1618)과 이덕형(李德馨, 1561 ~ 1613)의 유쾌한 우정 이야기, 황진이(黃眞伊, ? ~ ?)와 서경덕(徐敬德, 1489 ~ 1546)의 남녀를 초월한 예술세계 등 유명한 일화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황진이의 사랑 노랫말은 당대는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조선 영조 때의 가인(歌人) 김천택(金天澤)은 자는 백함(伯涵), 호는 남파(南坡)이다. 가계와 생몰연대가 정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168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해동가요』에 숙종 때 포교를 지냈다고 소개되어 있으나 관직생활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자신의 시(詩)를 『청구영언』『여항육인(閭巷六人)』항목에 넣은 것을 보면 김천택은 여항((閭巷:시정 골목)에 살던 중인 계층으로 보인다.

4부는 『청구영언』이후의 가집(歌集) 발간 - 김천택은 《해동가요(海東歌謠)》를 편찬한 김수장(金壽長, 1690 ~ ?)과 함께 숙종과 영조 때 가곡의 전성기를 주도한 시인이자 가객(歌客)이다. 고려 말엽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여러 사람의 시조를 모아 1728년(영조 4)에 엮은 고시조 집 『청구영언』은 필사본. 1권 1책.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집(歌集)중에서 편찬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방대한 것이다. 이 시기에 김천택의 『청구영언 1728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가집으로 꼽히는 김수장(1690-?)의 '해동가요'(海東歌謠, 1755년), 박효관(생몰년미상)·안민영(1863-1907)의 '가곡원류'(歌曲源流)(1876년)가 제작되었다.

“조선후기는 가곡의 전성시대였다. 사대부 음악인 가곡이 중인계층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기게 된 것이다. 18세기에는 가곡연행을 위한 악보가 만들어졌다. 노래 선율의 흐름에 따라 물결처럼 그렸는데 이를 ‘수파형(水波型)악보’라고 한다. 19세기에는 가창방식이 보다 표준화 되었고 노랫말에 연음표(連音標)를 표기하여 음의 높낮이와 박자 등 정확한 음악적 정보를 나타냈다. 『가곡원류(歌曲源流)』는 대표적인 연음집 가집이다. 20세기에는 인쇄술 발달에 힘입어 활자본 가집이 더 널리 보급되었다.”고 전한다.

기획특별전(2017.4.28. - 9.3) “순간의 풍경들. 『청구영언』한글 노랫말 이야기”가 널리 홍보되어 우리 조상의 숨결과 역사로 우리글의 멋과 맛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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