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노인복지관, 김희태 강사랑 역사탐방길에 오르다.

수원시 광교노인복지관(한해영 관장) 역사 문화탐방 반에서는 김희태 강사의 인솔하에 10명의 회원이 지난 8월 30일(수) 10:00~12:20에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사적 제478호)을 탐방했다.

이번 탐방은 지난 시간 주제였던 수원화성과 8일간의 축제, ‘화성행행도’로 살펴보는 정조의 원행과 정조가 개혁을 꿈꾸었던 수원 화성의 이해 강좌를 밑바침으로 현장 탐방을 하게 되었다.

복지관 2층 가람터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후 1시부터 80분간 국내여행 안내사,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의 김희태 강사로부터 회원 20여명이 강좌를 듣는다.

조선시대에 22대로 왕위에 오른 정조대왕(제위 1776년~1800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가 가까이 있는 수원화성은 정조 18년(1974년)부터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제3호로 지정된 수원 화성은 성곽 예술의 꽃이라고 부르고 있다.

1975년에 있었던 정조의 원행길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근거로 정리되어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때 정조의 원행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가 함께 진행돼 성대하고 화려한 8일간의 축제로 남아 있다.

▲ 신풍루

10시에 신풍루 앞에서 만난 일행은 화성행궁 (신풍루-봉수당-낙남헌)-화령전–나혜석 생가터-수원 화성 화서문–장안문–화홍문–우시장터-팔부자 거리–수원성지 등을 답사했다.

정조대왕 8일간의 행차 6일차에 정조가 새벽에 수원부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신풍루 사미도) 오전에 수원부 노인들을 초청해 양로연을 베풀었으며 식사와 함께 비단1필, 지팡이 등을 선물로 주었다(낙남헌양로연도).

▲ 봉수당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으며 정조가 수원행차시 머무렀던 곳이다.
▲ 낙남헌은 각종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한 행사용 건물이다.

낙남헌은 화성행궁 중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일제강점기 때 신풍초등학교 교무실로 사용되었기 때문) 정조가 과거를 실시하여 급제한 이들에게 합격증을 내려주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5일차에는 봉수당 진찬연(봉수당진찬도)의 행사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는 자리로 마련되는데 봉수당의 의미는 장수 ‘수’ 기원할 ‘봉’을 써서,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했던 정조가 내린 어제로 이전까지는 장남헌으로 불렸다.

낙남현을 지나 들어간 화령전(사적 제115호)은 화성행궁과 별개의 시설로 정조 사후 그의 아들 순조(1801년)에 의해 창건되어 정조의 영전을 모신 사당으로 해마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

▲ 운한각은 화령전의 정전으로 정조의 초상화를 봉인한 건물이다.

화령전은 1800년 6월 28일 정조대왕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 정조대왕을 봉인하기 위해 만든 어진봉안각이다.

본래 화령전은 설치된 외삼문을 통해 드나들도록 하는 구조였으나 현재 문이 잠겨 있어서 화성행궁을 통해 다시 나오며 신풍초등학교(분교) 정문을 지나 담장 갤러리를 보며 외삼문 앞에 하마비가 설치된 곳으로 이동했다.

우화관 자리였던 신풍초등학교는 고종 33년(서기 1896년) 2월 15일 설립되어 역사와 전통을 지녔는데, 지금은 화성행궁 2단계 복원사업추진을 위한 학술조사로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우화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로 1789년(정조 13) 수원부 전시 건립되었다.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며, 외국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나 연회장소로 사용되었었다.

우리나라 여성최초 서양화가이며 작가인 나혜석 생가터를 둘러보고, 벽화골목 왕이 걸었던 옛길을 따라 화서문을 통과하여 성곽길을 걸었다.

▲ 나혜석 생가터

수원화성의 서쪽문인 보물 제 403호인 화서문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 채제공이 썼으며, 옹성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 성문 공사를 맡은 사람들과 책임자들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이 새겨져 있어 찾아보았다.

▲ 행궁동 왕의 옛길서 본 화서문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호)은 성곽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의 일종으로 만들었으며 내부는 3층으로 꾸며 2층과 3층 부분은 마루를 깔았고 사다리를 놓아 위 아래로 통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 서북공심돈

북문인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으로 웅장한 위엄을 주고 있으며 편액은 전 참판 조윤형이 썼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상징하는 의미이다.

▲ 장안문

북수문인 화홍문은 서예가 유한지가 썼으며 '화'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자는 무지개를 뜻하는 글자로 시원스레 흐르는 아름다운 수원천 앞에서 보물 제 1709호인 방화수류정도 올려다 보고 단체사진도 찍었다.

▲ 북수문인 화홍문 앞쪽에서 단체사진

수원천을 따라 걷다가 수원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옆 수원동산교회가 보였는데, 1909년에 일본인 최초의 선교사에 의해 지어진 교회라고 전한다.

그 선교사가 일본에 갔다가 죽을 때에 유해를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대로 광교산 보훈병원 자리에 묻혔다가, 이 교회 옆에 모셨는데 멀리서도 묘석이 보였다.

이 동산 교회는 성서중심 교회로 목사 없이 신자들끼리 교회를 운영한다는 특색이 있다고 한다.

또 옛적 대형 우시장 자리가 있었던 곳을 둘러보니 주위에는 숙소들이 보이며 그 당시의 모습을 가늠케 했다.

팔부자 거리는 북수동 옛 길로 정조대왕은 화성 축성을 시작하면서 전국 8도의 부호와 상인들에게 혜택을 주어 수원으로 옮겨 살게했다. 이때 형성된 거리가 팔부자거리라하여 상업의 진흥을 꾀하였고, 팔부자집 세집을 매입해서 북수동 성당이 생겼다고 한다.

▲ 북수동 성당

구 수원성당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빠리외방전교회 심응영 신부가 수원화성의 거룩한 순교를 기념하고 미신을 타파하기 위하여 설립한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다.

조선 후기 정조대왕이 승하 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져 수원에서는 토포청과 화청관이 있던 북수동성당 일대가 가장 심했던 장소였고, 수원순교성지 박물관 건립 예정과 지금은 사라진 구 북수동 성당 보건을 위한 초석은 수원순교지기념비에 묻어놨다고 한다.

▲ 수원 순교자 현양비

옆 건물은 뽈리화랑으로 옛 소화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상설 전시로 야생화 사진전, 개인 전시, 박해시대 형구 전, 북수동 성당의 4대 주임신부 심뽈리 신부의 유품 전시로가 있다.

행궁동 행궁 맛집에서 식사를 한 일행은 왕의골목 3코스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촬영지에서 마무리하고 헤어졌다.

김희태 선생님의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은 강의와 함께 탐사하는 시간이라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되었으며 다음 2차 현장 탐사는 용주사와 현릉을 탐방할 예정이다.

 아래 링크를 누르면 램블러로 이동됩니다.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131533/793552/

저작권자 © 광교IT기자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