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와 무향의 터전, 산수화 -수원고읍성과 독산성, 그리고 화성-

수원시광역행정시민협의회와 산수화포럼에서는 지난 28일 수원 이비스앰배서더호텔 몽마르뜨홀에서 ‘산수화 지역(수원, 화성, 오산)의 무예전통과 상무정신’을 주제로 제3회 산수화 포럼을 개최했다.

오늘 포럼은 수원시광역행정시민협의회 이정미 사무차장이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사회자는 참석한 내빈으로 “수원시광역행정시민협의회 이재창 공동위원장, 산수화포럼 우호태 회장, 조완상 부회장, 김종필 부회장, 수원문화원 김형인 사무국장, 소비자교육중앙회경기지부 박명자 회장, 경기문화예술단체연합회 박상화 회장”을 소개하면서 “오늘 포럼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산수화 포럼 우호태 회장의 환영사와 수원시시광역행정시민협의회 이재창 공동위원장의 축사가 있었다.

▲ 무예24기 이경석수석사범 시연

이어 무예24기 이경석 수석사범이 본국검과 월도로 무예시연을 보여주었다.

무예24기는 조선 정조 때의 관군이 익혔던 24가지 궁중 기예를 일컫는 것이며 각 기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당시 발간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1790)에 그림과 함께 실려 있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 있는 24가지 기술을 나열하면,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鏜鈀), 기창(騎槍), 낭선(狼筅), 쌍수도(雙手刀),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마상쌍검(馬上雙劍), 월도(月刀), 마상월도(馬上月刀), 협도(挾刀), 등패(藤牌), 권법(拳法), 곤방(棍棒), 편곤(鞭棍),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球), 마상재(馬上才)이다. 각 무술에서 사용하는 무기와 권법 등을 기준으로 구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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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포럼은 좌장을 맡은 이음아카데미 이재훈 대표의 사회로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장의 주제 발표와 이경석 무예24기 수석사범, 정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황석진 지역공간연구회장의 지정토론으로 진행됐다.

▲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장,활과화살,환도,월도 등 병기,무예도보통지

주제발표에 나선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장은 첫 마디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북한의 단독 등재신청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선정됐다. 남북공동 등재의 꿈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아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수원, 화성, 오산의 뿌리와 줄기는 하나다.”고 말하면서 먼저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조선시대 수원은 현재의 화성과 오산을 포함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 세 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산수화‘라는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세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상호 이해와 협력 아래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김영호 소장은 “예로부터 수원도호부에 속한 수원, 화성, 오산은 수원고읍성, 독산성, 수원화성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무예전통을 지닌 무향(武鄕)”이다,“고 강조했다.

“수원고읍성이 축성된 시기는 독산책(독산성)을 설치했던 무렵(온조왕 11년 7월)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에서는 모두 고읍성은 토축이며 둘레가 4,035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 초기의 수원은 후방 보급기지의 역할을 맡았다.

‘정조실록’과 ‘장용영고사’를 보면 현륭원은 본래 수원부의 강무당(講武堂)이 있었던 곳이며 건능은 무기고 자리이며 융릉과 건능 앞에 펼쳐진 너른 숲은 1789념 이전까지 수원도호부에 소속된 군사 훈련장이었다. 이처럼 수원고읍성은 수원화성이 건설될 때까지 독산성과 함께 수원도호부의 핵심 방어시설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당시 최악의 패전으로 꼽히는 광교산 전투를 통해 수원이 전략적 요충지라는 사실이 부각되었다. 이치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권율 장군은 독산성에 주둔하며 기습전과 유격전으로 왜군을 물리치며 ‘세마대의 전설’을 만들어냈다”며 임진왜란으로 요새가 된 독산성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영의정으로 전쟁을 총지휘했던 유성룡도 독산성을 주목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군이 영남 해안으로 퇴각한 이후부터 수원고읍성과 독산성에서 군사훈련이 이루어졌고 1594년 10월, 독산성에서 무예 시험[試才]을 보았다.

‘선조실록’에 수원은 “경기의 큰 고을로 양호(兩湖: 충청도와 전라도)의 요충지이자 서울의 보장지”라거나 “실로 우리나라의 정예로운 군병이 있는 곳”으로 높이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병자호란 직전에 수원사람들은 병사가 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길 정도로 상무적 기풍을 지니고 있었다. 병자호란 때 김준용 장군이 지휘한 광교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수원의 상무적 기풍이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처럼 “수원화성과 수원고읍성, 독산성은 모두 한국 무예의 성지이다. 이제 무향의 터전 산수화 지역의 무예전통과 상무정신의 재조명을 통해 이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실천하고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고 말했다.

▲ 무예도보통지

주제발표에 이어 지정토론에 나선 이경석 무예 24기 수석사범은 "현재의 무예 24기는 전승된 무예가 아닌 복원한 무예라고 하면서 무예도보통지에 제시한 그림과 설명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동작의 재현, 무기의 중량, 훈련 공간 등 제약으로 일반 시민에게 보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또한 일반인들이 건강을 위하여 배우려고 하는 신체단련방법이크게 바뀌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예24기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화성·오산 지역에서만큼은 전통의 계승을 위한 지원방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말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정해은 책임연구원은 “현재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화성을 넘어 수원고읍성과 독산성을 중심으로 강연한 수원의 역사조명은 의미 있는 관심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늘 강연을 통해 수원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수원고읍성과 독산성의 의미와 가치가 크게 주목받게 되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황석진 지역공간연구회장은 ”산수화 지역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겠으나 본인은 문무경(文武經)의 합일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무예전통을 대표하는 공간이 연무대이고 잊혀졌거나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공간이 수원고읍성과 세마대다. GPS기반 기록매체인 램블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담아보았다.“고 말하면서 ”수원고읍성, 독산성(세마대), 수원화성을 연결하는 도보 답사길을 만들어 건강한 여가생활, 역사, 지역체험의 공간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세 개의 성을 무예로 연결시키려면 유적과 같은 공간에 이야기(내용)가 함께 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에 현대적 감각을 입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개최된 산수화포럼은 3번째이다. 1회는 수원고읍성을 중심으로 한 포럼이었고, 2회는 지역의 정체성과 인문학적 삶을 고찰하는 포럼이었다. 무향의 터전 산수화 지역의 무예전통과 상무정신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고 서로 상생 번성하는 지역으로 발전되기를 기원한다.

공동취재: 유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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