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교육 사회적기업 씨드콥,교토나라 지역을 답사

3.1절을 앞두고 청년교육 사회적기업 씨드콥,교토나라 지역을 답사하다

청년교육 사회적협동조합 씨드콥(대표 이승환)에서는 겨울방학기간을 이용하여 미래세대 주역인 20명의 청소년들과 오사카 교토 나라 지역을 답사하였다.

글로벌씨드캠프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청소년들로 구성되어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에 대하여 알아보고 일본에서 우리 한반도의 역사 흔적을 찾아보고자 추진하였다.

특히 금년은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매우 뜻깊은 행사가 되었다. 

▲ 추모 행사 답사 단원 일행(씨드콥 사무국 사진 제공)

1938년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국민 총동원령을 제정했다.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여파가 미쳤다. 일본은 모집·관 알선·징용 등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다. 국내를 비롯해 일본, 사할린, 남양군도로 800만명의 조선인들이 억울하게 끌려갔다.

일본은 패전 사흘 뒤인 1945년 8월 18일, 일본 전범의 재판과 관련해 일어날지도 모를 재일 조선인들의 폭동을 우려하여 조선인 노동자를 부산으로 송환하라는 명령을 일본 해군을 통해 예하부대에 내렸다. 이러한 명령에 따라 강제 징용되었던 7,000여 명의 한국인을 태운 4,740t급 일본 해군 군함 우키시마호는 8월 21일, 일본북동쪽에 있는 아오모리현[靑森縣]의 오미나토항[大溱港]을 떠났으나 부산항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는 24일, 돌연 방향을 돌려 일본 중부 동해 연안에 있는 마이즈루항[舞鶴港]으로 들어갔는데, 이 때 갑자기 폭음과 함께 배가 폭발, 두 동강이 나면서 침몰하고 말았다.

▲ 우키시마호 침몰 에상 지점(씨드콥 사무국 제공)
▲ 침몰하는 우키시마호(하)와 구 소련의 철수 배(상)

일본 당국은 배가 방향을 바꾼 것은 미국 점령군의 정선(停船) 명령에 따른 것이며, 배가 침몰한 것은 미군이 부설한 기뢰 때문이라고 지금까지도 주장하고 있다. 또 조선인 승선자 3,725명, 사망자 524명, 실종자 수천여 명으로 발표하였으나, 당시 현장을 목격한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사망자만도 1,000명이 넘으며, 배에 탔던 조선인 생존자의 말을 빌리면 7,000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 1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이 배에 승선하였고, 최소한 5,000명이 사망하였다는 자료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홋카이도[北海道]·아오모리현 등 일본 도호쿠[東北]지방으로 끌려가일제의 강제 노역으로 노예처럼 연명하던 노동자와 그 가족들로서, 광복의 기쁨과 귀향의 즐거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2001년 8월 23일에는 교토[京都] 지방법원이 이 사건과 관련된 한국인 생존자 15명에게 일본 정부가 300만엔씩 총 4500만엔을 배상하라는 국가배상명령 판결을 내림으로써 처음으로 원고측 주장을 일부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소송에서 '당시 국가가 징용자에 대한 수송책임이 없었으며, 폭침은 미국이 부설한 기뢰로 인한 것으로 불가항력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아직까지도 진상 조사나 공식 사과는커녕 관련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는 등 어처구니없는 책임 회피 행각을 계속하고 있다.

81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 아는 이들은 우키시마호 진상규명 협회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등 관련 민간단체 몇 곳에 불과하였다.

글로벌씨드캠프를 기획하면서 청년교육 사회적협동조합 씨드콥에서는 1월 초 사전답사를 진행하였다. 또한, 국내에서 진행된 사전모임을 통해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진상 규명을 위해 민간이 주도하여 만들어진 진상규명 위원회 등의 활동 그리고 지금까지 우키시마호 사건을 알리려고 하였던 진상규명 위원회나 마이즈루시 시민단체들 구성원들이 고령으로 점점 인원이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들을 청소년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미래세대 주역인 청소년들이 중심이 되어서 우키시마호 순난비를 알리고 큰 꿈을 갖고있는 우리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고민하게 되었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에 관해서 글로벌씨드캠프 참여학생들이 논의를 하였고, 우키시마호 순난비를 방문하는 일정이 설 명절을 앞두고 있으니 순난비에서 앞에서 고국에서 준비하여 갖고 간 음식으로 간단하지만 정성껏 차례를 지내는 것과 비바람에 훼손된 방명록 개.보수, 무궁화 헌화, 향로 설치, 마지막으로 순난비 석상 정화활동 등을 결정하였다.

▲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포스터와 김복동할머니
▲ 우키시마호 순난비 앞에서 정성껏 차례를 올리다(씨드콥 사무국 사진 제공)

글로벌씨드캠프 2일차에 일본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로 헌신하신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접하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청소년들은 오사카 숙소에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교토(京都)부 마이즈루(舞鶴)시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 부슬비가 내려서 차례를 어떻게 지낼지 걱정을 하였으나, 다행히 마이즈루시 시모사바카 마을에 도착하니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우키시마호 순난비에 도착한 청소년들은 일사불란하게 각자 맡은 역할대로 차례상을 준비하고 한국에서부터 배낭 속에 챙겨 온 한과와 약과, 엄마의 도움을 받아 만든 전을 올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차례를 지냈다.

20여 분간의 차례를 마치고 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순난비 방명록을 개.보수 하였고, 남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순난비 석상 및 주변 정화활동 그리고 향로를 설치하였다.

▲ 순난비 석상 주변을 정화활동하는 단원들(씨드콥 사무국 사진 제공)
▲ 우키시마호 봉사활동 전(좌), 후(우) (씨드콥 사무국 사진 제공)

우키시마호 순난비에 방문하기 전날 저녁 숙소에서 태극문양을 형상화하여 꽃으로 방명록 겉표지를 장식한 장은영(한국외대부속고 1학년) 양은 평소에 모르던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며, 이번 우키시마호 순난비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고 참여 후기를 남겼다.

“일본 여행을 가서 역사 봉사활동을 한 것 자체가 무척이나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사실 이 봉사활동을 준비하기 전에는 나도 우키시마호 사건을 모르고 있었고,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웠다.단순히 우키시마호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아닌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했다는 것이 더욱 뜻 깊다. 나는 방명록을 담당했는데 팀 동생들과 직접 방명록을 꾸미고 표지를 붙이는 등 활동을 했다.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 장은영 단원과 방명록(씨드콥 사무국 사진 제공)

청년교육 사회적협동조합 씨드콥에서는 이번 글로벌씨드캠프를 통해서 처음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마이즈루시에 위치하고 있는 우키시마호 순난비에 대해 미래세대 주역인 청소년들과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노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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