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지난 주말에 봄맞이로 뿌리 깊은 역사의 도시이자 천년의 고도인 나주시와 항구의 도시 목포시를 다녀왔다.

우선 나주시 금성관을 찾기 전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TV 방송에서 듣던 “유명한 나주곰탕의 원조로 불리는 나주 곰탕 하얀집을 찾았다. 40여 년 전통에 4대 째 며느리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집이다. 시할머니 때부터 사용해온 100여 년 된 가마솥에서 곰탕 국물이 끓고 있는 이곳의 사골 맛이 진하며 잡냄새가 없다는 평을 받는다.”고 소개했다.

▲ 나주 금성관의 전경

음식점은 나주 관아(금성관) 정문인 망화루 앞에 있다. 소문난 대로 가마솥에서 푹 끓여낸 뽀얀 국물로 한우 고기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내면서, 영양이 풍부해 기력을 돋우는 데 최고인 곰탕은 일미였다. 우리는 오순도순 대화하며 소화도 시킬 겸 객사 정청을 한 바퀴 돌았다.

▲ 금성관 뒤 뜰에 있는 은행나무 2그루(650년된 보호수)

망화루는 조선 성종 18∼20년 (1487∼1489)에 목사 이유인이 금성관과 함께 건립한 객사의 정문이다. 원래 2층 누각이었는데 후에 1층 문만 남았던 것을 영조 18년(1742)에 중건했으나 1920년 이후 일제에 의해 파괴됐다.

▲ 5.18민중항쟁 안내와 김준태 신인의'나주 그대 영원한 참세상의 고향이여'추모비

망화루 옆에는 “5.18 민중항쟁 안내”와 ‘김준태 시인’의 시“나주 그대 영원한 참세상의 고향이여”, 1980년 5월(5.18민중항쟁)에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학살하는 불의의 무리들에 대항하여 가장 빛나는 투혼과 업적을 남긴 그 넋들과 나주 시민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는 추모비가 있다.

전라남도 나주시 과원동에 전남유형문화재 제2호(지정일 1972년 01월 29일) 나주 금성관이다. 금성관은 나주목의 객사 정청이다. 객사는 관찰사가 관할구역을 순행할 때 업무를 보는 곳이며, 중앙의 사신이 묵던 곳이다. 특히 정청에는 전패(왕을 상징하는 일종의 위패(位牌)나 서울에 중국 황제를 상징하여 봉안된 의물)와 궐패(闕牌)를 모시고 매월 1일과 15일에 고을의 관리와 선비들이 모여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며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을 양쪽의 익사에서 유숙하게 하던 곳이다.

금성관은 1373년(고려 공민왕 22년)에 금성군의 정청(政廳)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창건하였고,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익공집식 팔작지붕이다. 1603년(선조 36)에 크게 중수했고 1884년(고종 21)에 목사 박규동(朴圭東)이 삼창(三創)을 했으며,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 건물로 사용해오면서 원형이 파괴되어 그 후 1963년 9월에 보수, 1976년에서 1977년 사이 완전해체 복원하였다. 곁에는 사마교비(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89호), 금성토평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5호), 목사선정비(25기) 등의 문화재가 있다.

▲ 사마교비

나주시는 옛 부터 금성산의 산형이 서울 삼각산과 같다 해서 소경이라 불렸고, 역대국난을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운 선열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의병장 창의사 문열공 김천일 선생, 조선의 석학 신숙주의 태생지임은 물론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소문나있다.

▲ 25기 선정비

목포에 첫 방문지는 영산로 29번 길(유달동), 목포근대역사관(구 목포일본영사관: 사적 제289호 – 1981년 09월 25일)은 붉은 벽돌로 마감한 2층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유달산 기슭에 있다. 1900년 1월에 착공하여 같은 해 12월에 완공했다. 2층 구조에 면적은 6,575㎡이다. 1907년까지 일본영사관으로 사용하였고 1914년에 목포부 청사, 1974년부터 목포시립도서관, 1990년부터는 목포문화원으로 사용하고 대한제국시대의 건물이다.

▲ 목포근대역사관 전경

입구 계단 옆에는 목포 근대문화역사공간의(1897년 최초 개항의 목포 역사와 숨결이 숨 쉬는 공간, 올해부터 2013년까지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조성된다.) 안내도가 그려져 있다.

▲ 방공호 안내도

근무시간이 지나 정문은 닫혀있고 둘러서 옆문으로 올라가다가 유달산(해발 229.5m)이 멀리 보인다. 쪽문을 들어서니 방공호가 있음을 게시에 안내한다. 근대역사관 내부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구 목포부청 서고 및 방공호가 있다는 안내가 있다. 역사관 앞에 공간에는 목포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그 앞에는 국도1, 2호선 기점 기념비가 있다.

▲ 역사관 앞에 목포 평화의 소녀 상
▲ 국도 1, 2호선 기점 기념비
▲ 국도 1, 2호선 기점 변경 안내문

기점 기념비를 떠나 초원 실버타운 교차로를 건너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한 창성장 (게스트하우스), 투숙객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안 되어 굳게 닫힌 곳, 주위에 영화 1987에 나왔던 연희네 슈퍼와 일본식 건물들, 그리고 아직 개발을 기다리는 옛 거리가 많이 남아있다.

▲ 목포 근대역사 문화공간 안내도

우리는 이곳을 떠나 동명동 – 삼학동 – 목포 자연사박물관 – 목포 용해동 해안가에 있는 갓 바위(천연기념물 제500호)에서 해안로 야경을 구경했다. 목포 미항로(옥암동)독천골에서 신진대사와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낙지의 효능이 넉넉한 육회낙지 탕탕이, 낙지연포탕과 낙지호롱구이로 저녁식사를 맛있게 해결하고 멋과 낭만이 있는 목포, 항구와 예향의 도시 목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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