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산성 둘레길를 돌며 옛 동료들과 추억을 더듬는다.

100세의 삶을 즐겨라. 이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자주 만나고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영어속담에 Out of Sight, Out of Mind 즉 ‘만나지 않으면 마음이 멀어진다’라는 뜻이다.

아주 오랜 젊은 시절 직장에 같이 근무했던 대학의 선후배 사이, 우리들은 1년에 4번을 만난다. 남자 4명에 여성1명, 언뜻 보면 균형이 안 맞는다. 그래도 만나면 균형잡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11일 우리들의 약속은 오전 11시 인천 부평 계산역 3번 출구였다. 수원에서 가자니 도무지 시간계산이 잘 나오지를 않는다 전철, 버스, 승용차, 궁리 끝에 수원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러나 어찌할 꼬, 부평으로 가려면 안산을 지나 2시간30분, 인천 주안으로 가려면 훨씬 시간 단축은 되는데 약 15분 후에 출발한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속시간 35분이 늦었다. 버스는 신호대기와 체증 속에서 수인산업도로를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다. 오늘은 남자만 넷이서 인천 부평의 계양산 둘레길을 가기로 했다. 내 고향이 인천이지만 이곳은 처음 가보는 곳이다.

▲ 인천 계양구 계양동산 52-3 계양산성 표지판

지리를 잘 알고 있는 후배를 따라 우리는 계양산성 둘레길을 돌았다. 얼마 있으면 점심시간이 되어 산행의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은 편이다. 나무계단으로 오르니 계양산성의 표지가 보인다.

해발 395미터, 정상 동쪽 봉우리를 나이테 두르듯 에워싼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1,180미터 성곽의 외부는 잘 다듬은 돌로 약 5미터, 높이로 쌓아 올렸다. 축조는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증보문헌비고>의 <관방성곽조>에 의하면 2006년 5월 현재 동문과 북문 및 수문이 존재하던 터가 남아 있는데 성 내부에는 헬기장과 체육시설이 들어서 성은 많이 훼손되었다. 1992년 5월15일 인천광역시의 기념물 제 10호로 지정되었다.

▲ 정명 800년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양 선언문

그 옆의 계양연표를 보았다. 이곳은 한강 하류 초입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중요한 군사거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부평도호부와 불과 2리 밖에 있는 산성으로서 역사, 교통, 통신, 전략 면에서 중요한 지역이다. 4, 50분을 걸어 올라갔다. 숨이 차고 배도 고파 온다. 정상은 보이지만 자신이 없다. 평소에 산을 자주 안 가본 사람들이어 무리는 절대 금물이었다. 올라 온 길이 아닌 비교적 평지가 많은 다른 코스로 내려왔다. 그래도 중간에는 쉬지 않고 내려왔다. 드문드문 산을 오르는 사람은 보였는데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은 듯 하였다.

 

산엘 왜 오르는가?

첫째 자연이 주는 고마움을 알고 깨닫기 위함이다.

둘째 자연은 절대 거짓말을 모른다. 결국 삻의 진실을 배우기 위함이다.

셋째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일상에서의 복잡하고 어려움을 벗어나 힐링하기 위함이다.

넷째 산 주변과 산속에 숨어있는 역사적 가치와 조상의 숨결을 알며 애국하고 보존하려는 마음을 배우려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산행을 통한 직접적인 건강을 위함이다.

하여튼 산행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꽤나 많이 나누었다.

정상은 못 갔더라도 산중턱에서 바라본 인천광역시의 부평의 모습은 수원 팔달산 서장대에서 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과 아파트, 좁게만 보이는 신작로, 그래도 분명하게 보이는 건물이라면 단연 학교건물이었다. 대부분 학교는 운동장이 있으니 넓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약간은 공기가 뿌우연한 모습, 저 곳에서 매일 1초1초 삶의 전투가 벌어진다.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다. 그래서 웃음도 있고 울음도 있다.

우리는 이 동네에서 소문이 많이 나 있다는 순대국 집을 찾았다. 언덕길로 내려오고 또 내려와 횡단보도를 지났다. 백암 순대국집에서 시장을 달래는 점심을 하며 오래 간만의 회포를 풀었다. 누가 특별하게 주제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옛날로 돌아간 그때의 추억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과거는 그리운 것인 것 같았다. 이제 땀을 식히며 배를 채웠기 때문에 오히려 개운하였다. 오늘 하루의 운동량은 이것으로 족하였다. 3개월 후의 만남을 약속했다. 옛이야기, 가벼운 산행, 그리고 즐기는 음식 이것이 곧 힐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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