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성신사, 홍난파 노래비, 3.1독립운동기념탑, 서장대' 탐방

광교노인복지관 역사탐방반 8명은 김희태 강사와 함께 24일(수) 성신사, 홍난파 노래비, 3.1독립운동기념탑, 서장대 등 수원화성 일대를 탐방했다.

▲ 이곳은 화성 축성공사를 마무리 짓고 정조가 특별히 건립한 성신사의 원래터이다.

수원화성은 정조가 축성하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현장 지휘로 완공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팔달문, 장안문, 화서문, 창룡문, 서북공심돈, 서장대, 서포루(西砲樓)와 서포루(西飽樓), 서북각루, 화홍문, 방화수류정, 연무대와 활터, 봉돈 등 50여개의 시설물로 이루어져 있다.

▲ 성신사

성신사는 화성을 지켜주는 신(神)을 모신 사당이다. 이 사당은 1796년(정조 20) 7월 11일부터 공사해 1달 만에 완공했다. 3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화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으로 화성 축성의 마지막 작업으로 만들어 졌다. 성신사의 위패(位牌)는 길일을 기다려 9월 19일에 정당(正堂)에 모셨다.

사당 안 가운데 탁자 위에는 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가을 음력 첫 달(孟朔)에 제사를 드렸다. 일제 강점기에 훼철됐으나 수원시의 화성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으로 2008년 복원했다. 성신사고유례는 복원 이후 (주)화성연구회 주관으로 매년 봉행하고 있다.

원래 성신사 터는 현재 성신사와 약수터 사이 지하 5미터 아래에 있었다. 2008년 성신사 터 발굴조사로 정당, 재실, 전사청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주변 도로 여건 등 원 위치 복원이 어렵다는 이유로 현 위치에 복원한 것이다.

▲ 노래비 홍난파

팔달문에서 남포루로 이어지는 성벽 옆 계단을 타고 계속 오르다보면 성벽 아래로 난 길 위의 언덕에 홍난파 노래비가 있다.

기념비는 1968년에 만들어졌으며, 노래비에는 홍난파 글씨와 얼굴이 새겨져 있고 '복숭아꽃 살구꽃...'이란 '고향의 봄' 노랫말이 새겨져 있다.

홍난파의 본명은 영후(永厚)이며 '고향의 봄'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을 잃은 슬픔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애절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다양한 문예활동을 통하여 일제강점기의 한국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하지만 문제는 홍영후가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을 비롯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역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발표한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대표적인 친일음악인이라는 점이다.

홍난파는 남양 홍씨로 고향은 화성군 남양읍 활초리에서 출생하였으나, 주 활동 무대가 수원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기념비를 두었다고 한다. 1941년 1월에는 조선음악협회 결성대회에서 평의원에 선출되었고, 1941년 8월 30일 경성요양원에서 사망했다.

▲ 대한독립기념비 앞에서 김희태 강사가 3.1독립운동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3.1독립운동기념탑은 1969년 3월 1일 우리 선열들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쟁한 성업을 길이 빛내고 선열의 명복을 빌자는 참뜻을 두고 건립되었다. 대한독립기념비와 같은 자리에 건립되었다.

이후 광복후 중포산에 세운 것을 삼일동지회가 1969년 10월 15일 팔달산 중턱으로 옮겨놓았다. 대한독립기념비는 1948년 8월 15일 수원 동공원에 건립된 높이 4m의 기념비이다.

▲ 성 밖으로 물려 있는 지대석과 성벽을 관찰하다.

서암문을 통과해 서장대를 가기위해 성 밖으로 오르며 성벽을 관찰했다.

▲ 서암문 입구에서 역사탐방반 8명의 단체사진

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설치하였기 때문에 암문 가까이에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정도이다.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내어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설치된 문이다.

1796년(정조 20) 6월 18일 완공되었고 서포루는 그해 8월 18일 완공되었으며, 서암문이 적에게 발각되어 공격받는 것에 대비하여 설치하였다고 한다.

▲ 서장대에서 화성행궁을 비롯해 성안을 바라보는 역사탐방반 일행

화성장대인 서장대는 수원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수원화성의 총지휘본부다. 서장대에선 성의 안과 밖을 한눈에 훤히 볼 수 있고, 백리 내의 모든 동정을 살필 수 있어 총지휘가 가능했다.

2층 누각으로 지은 서장대는 독특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는 조선 정조의 친필 편액이 있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되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서노대는 사적 제3호로 서장대 뒤에 있으며, 여기에서 쇠뇌를 발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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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 김봉집 단장, 김영기 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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