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무돌길문화대학은 (사)무등산무돌길협의회와 광주평생교육진흥원과 함께 지난 27일(토)오전 8시20분에 무등산무돌길문화대학 안내해설사 교육과정 제5기 40여명이 광주 북구 중흥삼거리(광주역 뒤편 주차장)에서 모여 2일차(무등산무돌 4길~6길)실기교육을 실시했다.

▲ 무돌4길(원효계곡길)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먼저 빈 광장에서 진행요원이 가지고 있는 명찰을 받으면서 출석부에 서명하고 국민체조로 몸을 풀고 버스에 탑승했다.

진행 팀은“오늘 탐방도 운영진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1개조를 10여명으로 편성, 4개조로 운영하고, 항상 안전에 유의해 달라.”고 권유했다.

오늘은 무등산 무돌 길 담양구간으로 무돌4길(원효계곡길), 무돌5길(독수정길), 무돌6길(백남정재길)이며, 약 11km로서 휴식시간을 포함해 6시간 쯤 탐방한다. 무돌 길은 마을과 마을을 한 바퀴를 잇는 소통의 길로서 등산객의 분산과 교통문제 해결, 자연공원 확대, 지역경제 인프라 조성,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500년이 넘은 역사의 길을 걷는다.

담양이란 명칭은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시대, 백제시대에는 추자혜군이다. 신라 때는 추성군으로, 고려 성종(995년)때는 나주에 복속, 조선 태조4년에 국사 조구의 고향이라 군으로 승격, 정종1년에 왕비 김씨 고향이라 부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담양읍과 11개면 행정구역이다.

풍광이 아름다운 길로 문학과 예술, 의로운 삶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계곡 물길과 산길을 걸을 수 있는 재미와 광주에서 담양으로 넘나드는 소통과 삶의 길에서 민중들의 애환과 정겨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김인주 무돌길 개척자가 금곡동 유래와 큰 선비, 작은 선비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모습이다.

1. 무돌 4길(원효계곡 길): 약 3km, 1.5시간이 걸린다. 금곡마을(서림) – 원효계곡 길 – 평촌리(담안) – 반석마을 – 연천리(가사문학면소재지)를 걷는다.

무등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원효 계곡 하류를 따라 금곡마을과 평촌 마을을 걷는 길에 원효계곡에서 흐르는 물길이 원효계곡길이다.

4길은 경사가 없는 평탄한 길로 증암천 따라 마을도로와 논길과 숲길로 구성되어있다. 서림교회와 금곡마을 정자가 한적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이 무돌 길 제4길의 시작점이다. 제4길의 백미인 오솔길을 따라 숲 향기를 맡고 걸으면서 눈앞에 펼쳐진 풍요로운 들판과 멀리 산 능선을 조망할 수 있어 명품 길이다. 산길을 나와 증암천(= 광주 무등산 북쪽 산록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영산강으로 유입하는 지방 하천)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반석천 물소리를 듣고 전원의 아름다운 풍광을 느끼며 걷노라면 시가 절로 나오는 길이다. 담양군에서는 이 길을 ‘오방길’로 개방해 가사문화권과 연계해 관람객을 유혹하고 있다.

정자나무와 평촌교를 지나면 동림 마을로 향한다. 담 안마을에는 리움 웨딩 스튜디오가 그림처럼 자리하고 아트 존 담 안에서 천연색 체험 장 토우가 있어 마을의 신선함과 예술성을 더해준다. 평촌마을은 건강장수마을로 지정되어 농촌 마을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 문화에 활력을 불러 넣고 있다. 평촌마을 장수촌에서 먹는 손 두부와 장맛은 고향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반석 천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소쇄원으로 가는 다리가 나오기 전 멋스러운 소나무 한 그루와 의자가 길손을 유혹하고 있다. 고목이 다된 덩치 큰 왕 버들나무는 몸통만 남기고 서서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논길을 따라 아담한 마을길로 들어서니 전통찻집‘명가은’간판 이 보인다. 정겨운 담장 너머로 소담하고 자연스럽게 가꾸어진 고가에서 아기자기한 옛 정취와 그윽한 茶香을 느낄 수 있다.

연천마을(남면초교)은 가사문학면의 중심부에 자리 잡아 면사무소 등 모든 행정기관이 모여 있는 곳으로 창평군 내남면으로 제비 내, 연천이라 불렀다. 1914년 담양군과 청평군의 통폐합에 따라, 산음동, 취연리, 반석리 일부와 광산군 상대석면의 당촌리, 평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연천리라 이름 짓고, 담양군 가사문학 면에 속했다. 고려 공민왕 때 본관이 천안인 전신민에 의해 남쪽 서석봉 밑에 산음동이 개척되었고, 그 후 제주 양씨 소쇄처사 양산보 후손들에 의해 연천마을이 개척되어 내려오다가 1920년경에 솔개 연(鳶) 자가 제비 연(燕)자로 바뀌면서 연천(燕川)으로 개칭. 무등산을 남서방향으로 안고, 서로는 고서면일부와 광주와 경계, 동남으로는 화순군 이서면과 북면, 북으로는 창평면, 대덕면 등을 경계하고, 담양의 남단을 점유하고 있다.

▲ 평촌 담안마을을 가기위해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이다.

반딧불이도 머물고 가는 무등산 명품마을 평촌마을로 접어들면 마을입구(금산교)에 줄지어 선 솟대가 목을 길게 내밀며 방문객을 반긴다. 마을로 접어들면 솟대처럼 순박한 마을사람이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평촌마을은 원래 닭뫼, 동림, 버성골(우성), 담안, 평모 등 다섯 마을로 이루어져있다. 닭뫼만 좀 떨어져 있고 버성골과 동림은 이웃하고, 담안은 증암천 건너편에 있다. 평촌마을의 특산물로는 아삭이(오이)고추, 감자, 고춧가루, 마늘, 표고, 산나물 등이 있다.

무등산 원효계곡에서 흘러나와 평촌마을을 지나가는 증암천은 반딧불이를 비롯하여 다슬기, 남생이, 수달이 서식할 정도로 청정수역을 자랑한다. 마을 안길은 돌담이 많고 마을 앞 하천에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정감을 더한다. 우렁이와 함께 농사를 짓는 무 농약 쌀은 신뢰를 더해준다. 반딧불이가 꿈꾸는 명품마을에는 반디공원, 반디민박, 무돌 길 쉼터, 특산품판매장, 농촌체험 장 등이 있다. 분청사기를 재현하고 있는 평촌도예공방에서는 도예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직접 도예체험도 할 수 있다.

▲ 무돌5길(독수정길)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2. 무돌5길(독수정 길): 약 4km, 2시간이 걸린다. 연천마을 – 함충이재 – 정곡마을 - 경상마을을 걷는다.

담양구간 제5길은 산음교에서 시작한다. 산그늘이란 산음마을은 본래 창평군 내남면 지역으로서 ‘제비내’ 또는‘연천’이었다. 산음마을 독수정길은 연천리 함충이재(가마재: 큰 고개)를 넘어 정곡리로 가는 산길이다.

산음교를 지나면 광주호 주변에 밀집해 있는 16세기 호남 사림의 문화 활동의 성격과는 다른 독수정 원림(전라남도 기념물 제61호)이 있다. 이 독수정은 고려 공민왕 때 북도 안무사 겸 병부상서를 지낸 서은 전신민이 기거한 곳이다.

독수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이백의 시구“백이숙제는 누구인가, 홀로 서산에서 절개를 지키다 굶어 죽었네.”(夷齊是何人 獨守西山餓) 독수정 원림은 소나무로 둘러져 있어 절의가 느껴지고, 구릉과 길섶에 핀 원추리와 배롱나무는 충신 전신민의 넋을 달래준다.

▲ 독수정길에 대하여 쓰여진 이정표.

함충이재는 독수정 원림에서 북향으로 문이 난 독수정 마루에 앉아 다리쉼을 하고 몇 가구 되지 않은 아담한 산음동을 가로 질러 정곡마을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오른편에 서은 전신민의 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지막한 길을 따라 솔밭 길을 걸으니 함충이재가 나오고 무등산 자락 능선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재는 6.25전쟁 후 궁핍한 생활로 식량을 얻기 위해 담양, 화순 사람들이 땔감을 해다가 광주시장에 내다 팔고 넘나들면서 서로의 소식을 전했던 소통의 고갯길이다. 꾀꼴봉 동남쪽에 이 고개를 꾀꼬리가 벌레를 물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함충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하나 주민에게 물어보면‘가마 재’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넘나들었고, 동학혁명 때는 농민군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넘었던 길이다. 함충이재로 오르는 길은 마치 삼림욕을 즐기는 것 같다. 그동안 걸었던 길에 비해서는 조금 경사가 있지만 마른 소나무 잎들이 수북이 쌓여 폭신폭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 환암터 신목을 보기위해 수호신인 2그루의 느티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주변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형성된 이 길을 따라 오르고, 대숲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마음과 몸이 정화되는 기분이어 건강에도 좋은 길이다. 마을 주민이 임업을 함으로 길이 넓고, 경상마을 사람들이 담양 가사문학면 초등학교까지 이 길을 넘어 통학했다.

정곡마을은 함충이재를 20분가량 걸어서 도착한 마을이 ‘정곡마을’이다. 예사롭지 않은 집들이 많고, 문패도 남다르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 마을에는 화가가 많이 살고 있다. 무등산자락의 무돌 길은 대도시와 인접한 동네인데도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더 멋지다. 무등산 줄기를 드리운 채 들어선 정곡마을은 늠름하게 가지를 드리운 고목과 골목마다 줄을 선 돌담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시문마을(장문터)은 증암천이 흐르는 정곡마을과 경상마을 입구 삼거리 유둔 재를 넘나드는 교통 중심지로 그 길목에 장이 섰다고하여 장문 터라고 한다. 백두대간의 호남정맥인 백남정재 위로 오르면 1789년 명명된 환암마을이 있었는데 빨치산 토벌작전 시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자연마을이 불태워 없어지고 주민들은 아래 경상마을로 이주하였다. 경상리는 마을 앞으로 증암천이 흐르고 상류에는 경상저수지가 축성되어 있다.

▲ 천년의 신목노거수가 마을을 지키고 있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경상리 노거수가 있는 환암마을은 오늘날 차밭으로 바뀌었다. 차밭 바로 옆에 천년의 신목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우뚝 서있다. 이 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로 지금도 해마다 정월 15일이면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1992년 3월 9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41호로 지정되어 둘레 11m, 수관이 40m에 이르는 노거수지만 아주 건강하고 위풍당당하여 무돌 길을 찾는 답사 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경상저수지는 경상마을에서 백남정재로 가는 길에 큰 호수가 경상저수지이다. 이 저수지는 1962년 12월 31일에 준공되었고, 주위에 매화 밭 농장과 옥녀 탕이 있어 무릉도원의 아담한 풍광과 함께 한여름이면 시원함을 더해준다.

▲ 무돌6길(백남정재길)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3. 무돌6길(백남정재길): 경상리마을 – 백남정재 – 무동마을, 약 4km, 약2.5시간이 걸린다.

담양구간 제6길은 배넘이재, 무동촌재(百男丁터)로 상당히 험하고 음산하기까지 하다. 지난 날 도둑의 무리가 행인들의 소지품을 터는 일이 종종 일어나 장정 이 수백 명이 모여야만 넘을 수 있다는 말은 왜곡된 말이다.

아무튼 이 길은 영산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의 경계선이고 호남정맥 능선이며, 임진왜란, 동학농민전쟁, 한말 등 나라를 구하기 위한 우국지사 이병들이 요충 전략지로 이용한 수백 명이 넘어 다니던 길이다.

▲ 무돌6길(백남정재길)에 대하여 쓰여진 이정표.

백두대간의 호남정맥인 백남정재 위로 오르면 1789년 명명된 환암마을이 있었는데 빨치산 토벌작전 시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자연마을이 불태워 없어지고 주민들은 아래 경상마을로 이주하였다. 경상리는 마을 앞으로 증암천이 흐르고 상류에는 경상저수지가 축성되어 있다.

 

“우리 사무국은‘무등산’에 대하여 삼행시를 짓거나 탐방에 대한 소감이나 기행을 기록해서 무등산이나 무돌 길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도 달래고 흔적도 남기어 교육생의 문집을 만들면 좋을 듯해, 협조해주면 고맙겠다.”고 홍보했다.

오는 5월11일(토)무등산무돌 특별0길인 완성천지인 길 탐방을 권장했다.

 

램블러: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9011/147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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