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노인복지관 역사문화탐방 / 백제역사문화기행, 서산과 예산 탐방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명종대왕 태실 및 비’, 예산 ‘사물석불’, ‘임존성’ 탐방 안숙 부장l승인2019.06.27l수정2019.06.2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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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노인복지관 역사문화탐방반은 26일(수)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명종대왕 태실 및 비’, 예산 ‘사물석불’, ‘임존성’ 등을 탐방했다.

이번 탐방은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의 김희태 저자와 함께하는 ‘백제역사문화기행’으로 광교노인복지관 역사탐방 마지막 수업이다. 이날 수강생 13명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 3명과 함께 서산과 예산에서 백제역사문화탐방을 함으로 김희태 강사와의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

▲  국보 제84호로 지정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먼저 국보 제84호로 지정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탐방했다. 이 불상은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2.8미터의 거대한 불상으로, 단정하고 유연하게 조각된 솜씨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은 당시의 삼존불형식을 따르지 않았다. 백제 장인들의 창의성과 석공기술로 독창적인 삼존불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백제 인들은 석가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어린아이의 미소를 띤 미륵반가사유상을 그리고 오른쪽에 양손으로 구슬을 감싸고 서 있는 보살입상을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 부처님은 둥근 얼굴에 눈을 한껏 크게 뜨고 두툼한 입술로 벙글벙글 웃고 있다. 전체 조각 가운데에서 본존의 얼굴이 가장 두드러져서 높은 돋을새김을 이루고 있다.

잎이 두꺼운 연꽃대좌에 늠름히 서서, 양 손 모두 약지와 새끼를 구부린 채 삼국 시대 불상들의 독특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 한 손은 올리고 한 손은 내려 두려움을 물리치고 소원을 받아 준다는 시무외 여원인을 하고 있어 넉넉한 미소와 함께 부처의 넓은 품을 느끼게 한다. 대좌로부터 광배에 이르기까지 2.8m이다.

왼쪽 보살은 키가 자그마한데 마찬가지로 연꽃대좌에 서 있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약합 같은 것을 쥐고 있다. 보관과 옷장식이 화려한 편이고 연꽃광배 바깥으로 단순한 선으로 보주 모양을 나타내었다. 볼이 도톰한 얼굴에는 작은 눈에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천진한 웃음과 함께 전체적으로 4등신의 비례를 보여 어린아이상임을 느낄 수 있다. 보살은 둘 다 대좌로부터 광배 끝까지가 1.7m이다.

오른쪽 보살은 고개를 약간 외로 틀어 귀엽게 웃는 모습, 어딘지 짧은 듯한 4등신의 팔다리 비례와 통통하게 오른 볼 등이 네다섯 살 한창 귀여운 어린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한 다리는 내리고 한 다리만을 반대편 무릎에 올려 반가부좌를 하고 한 손은 팔꿈치를 구부려 뺨을 괴고 생각하는 자세로 앉아 있다.

이런 미륵반가사유상은 7세기 초 무렵 삼국에 공통됐던 신앙경향을 보여 주는 상으로 이 마애불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은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 외에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59년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홍사준 관장에 의해서다.

백제사 연구에 일생을 바쳤던 홍사준 관장은 당시 ‘보원사지’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있어 그곳에서 유물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홍사준 관장은 유물을 조사하던 중 나무를 하던 마을사람이 바위벼랑에 웃고 있는 산신령이 조각되어 있다고 알려줬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고구려와 사이가 좋은 시절에는 육로를 통해 중국과 교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수왕의 남하에 따라 남쪽으로 천도를 하게 되고 신라가 강성해져 한강 유역을 빼앗아 가 버린 뒤에는 중국으로 가는 길을 바다에서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당진, 태안 지역은 중국의 산동 반도와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이곳이 교역 항이 되었으니 여기에서부터 수도인 웅진(공주)이나 사비(부여)로 가는 길이 태안에서 서산을 거쳐 예산의 가야산 길로 해서 이르는 길이다.

6세기 당시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곳으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  4m 높이의 당간지주, 보물로 지정되었다
▲  오층석탑, 보물로 지정되었다
▲ 석조, 법인국사 보승탑과 보승비가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19-1에 자리한 ‘보원사지’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이르는 불교 유물이 발견된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나 백제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아우르는 세월이 천년을 뛰어 넘는다.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4m 높이의 당간지주와 오층석탑, 석조, 법인국사 보승탑과 보승비가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  ‘명종대왕 태실 및 비’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과 그 기념비이다. 1538년(중종 33) 2월 21일 축조하였으며 1546년(명종 1) 10월에 태실 및 비를 건립하고 1711년(숙종 37)에 다시 비를 세웠다. 운산면 태봉골의 나지막한 구릉 정상부에 있다. 석재를 다듬어 세웠는데 모양은 조선시대의 부도와 비슷하다. 전체 높이는 273cm이며, 태실은 90cm이다.

태실 앞에는 3기의 비가 나란히 서 있는데 가운데 것은 귀부와 이수를 갖추었다. 왼쪽 비에는 '대군춘령아씨태실'이라고 새겨져 있다.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3월 26일 보물 제1976호로 승격되었다.

조선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나면 그 태를 태항아리에 봉안하고 태실을 조성하였다.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 13대 왕 명종이 태어나던 1538년(중종 33년)에 의례에 따라 건립되었다. 태를 봉안한 태실과 ‘대군춘령아기씨태실비’가 먼저 건립되었다.

1546년 명종이 왕위를 이어받은 이후 태실을 가봉하면서 건립된 ‘주상전하태실비’는 비좌와 비신·이수를 갖추었는데, 비신이 대리석, 비좌는 귀롱대석(거북과 용 모습의 돌)으로 만들어 위엄을 갖추었다.

1711년 추가로 지은 ‘주상전하태실비’는 1546년 조성되었던 본래의 귀롱대석 위에 비신과 이수를 새로 조각하여 건립하고 이전에 설치했던 비는 개수된 비의 오른쪽으로 옮겨서 설치하였다.

조선 왕실의 많은 태실이 본래의 자리에서 옮겨졌거나, 변형된 경우가 상당한 데 비하여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조선왕조실록’등에 관련 기록이 상세히 전해져 있고, 원래의 자리에 온전하게 남아 있으면서 주변 지형 등 환경까지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더욱 크다.

▲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1984년 11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794호로 지정되었다.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의 석조사면불상이다. 1984년 11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794호로 지정되었다.

1983년에 발견된 것으로 돌기둥 4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이다.

사면불은 일명 ‘사방불’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사방 정토에 군림하는 신앙의 대상인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불, 미륵불을 뜻한다.

남면에는 본존불로 생각되는 여래좌상이 있고, 나머지 면에는 여래입상이 각각 1구씩 새겨져 있다. 머리 부분은 서면과 북면만 많이 훼손된 채 남아있고, 따로 끼울 수 있도록 되어있는 손은 모두 없어졌다. 4구의 불상은 모두 양 어깨에 옷을 걸치고 있으며 가슴부분에 띠 매듭이 보인다. 옷 주름이 매우 깊고 가슴아래에서 U자형으로 겹쳐 있다. 머리광배는 원형으로 불꽃무늬·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백제 특유의 양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 사방불로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과 비교할 수 있어 백제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  대련사
▲  임존산성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약 4km의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  임존산성

예산 임존성은 예산군 광시면과 대흥면, 홍성군 금마면이 만나는 지점에 해발483.9m의 봉수산에 위치해 있다. 이 산 산정에 조성된 임존산성은 높은 곳에 우물을 파서 물을 그 안에 모았다가 적의 공격 때 물꼬를 터뜨려 1차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고 결정적인 공격을 가할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임존산성은 약 4km의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2.5m, 폭은 3.5m인데 남쪽의 성벽은 굴곡이 심하여 성내에는 7~8m의 내 호가 둘러져 있다. 외벽은 돌로 쌓여 있고 안은 흙으로 메워진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주 약 5,194척, 높이 약 2.5m, 폭 약 3.5m로 말을 타고 달려도 넉넉할 정도다.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망했을 때 의자왕의 사촌 동생 복신, 도침(스님)과 흑치상지가 3년여 동안 후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하였으며 백제의 산성중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커서 산성 연구에 많은 기초가 되고 있다.

임존성은 광시면 마사리 방향에서는 성 아래까지 임도를 이용하여 승용차로 주차장까지 오를 수 있다. 처음에는 대련사로 잘 못 들어갔지만, 이곳에서는 산길로 상당이 올라가야만 했다.

이 성의 특징은 네 모서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다른 곳보다 2m 정도 더 두껍게 내탁하였으며, 성의 높이도 더 높게 축조하였다.

성벽은 외벽만 돌로 쌓고 안쪽은 돌과 흙을 다져 쌓았으며 둘레가 약 2.5km에 면적이 55만㎡가 넘는다. 성내에는 문지,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적대와 치, 배수구와 우물, 건물터 등이 남아 있다.

▲  예당호 출렁다리

한편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2019년 4월 6일 개통식이 열린 예산군 예당호 출렁다리를 건너봤다.

이 다리는 높이 64m의 주탑에 길이 402m·폭 5m 규모로, 성인 3150명이 동시에 통행할 수 있으며, 규모 7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 1등급으로 설계됐다. 출렁다리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설치돼 야간에도 이용할 수 있으며, 출렁다리와 이어지는 산책길(5.4km)도 조성돼 있다. 아울러 출렁다리 주탑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어 예당호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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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 부장  ansuk65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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