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음 이덕형 선생별서 터를 찾아

염재준 고문l승인2021.03.12l수정2021.03.1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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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는 유적지가 많다. 지난 3월 10일(수) 오전 11시에 도농역에서 양평 방향으로 경의선을 타고 남양주시 조안면 두물머리 앞 운길산역에서 내려 ① 출구에서 체육공원 쪽으로 걸으면 송촌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송천초등학교를 지나 마을 길을 따라 약 1.5km를 걸어 많은 유적지 한 곳 ‘한음 이덕형 선생별서 터’가 있다.

▲ 한음 이덕형 선생 별서 터 설명 게시.

청평 방향으로 (45번 길)길 따라 흐르는 강이 북한강인데, 예전에는 용진 강(龍津江)이라고 불렀다. 한음 이덕형의 유적지(별서 터)는 그 용진 나루(생태습지 앞에 표지석이 있다) 마을이 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이고 옛날에는 사제(莎堤)라 부르던 마을이다.

▲ 한음 이덕형 선생 별서 터 표지석( 한음 대감의 이력 기록).

한음 이덕형 선생(1561~1613)은 조선 역사 최연소인 31세에 대제학, 42세에 영의정에 오른 후 45세 되던 1605년 부친을 모시고 용진(龍津) 사제(莎堤)촌의 한적하고 소박한 별서(別墅)로 왔다.

▲ 읍수정을 복원해 놓은 모습.

사제마을에 거처하던 집의 이름은 ‘대아당(大雅堂)’이라고 불렀고, ‘읍수정(挹秀亭)’과 ‘이로정(怡老亭)’의 두 정자를 지었다. ‘읍수(挹秀)’는 ‘주위의 빼어난 경치를 이곳에 가져온다.’라는 의미이고, ‘이로(怡老)’는 ‘벼슬에서 물러나 만년을 즐긴다.’는 뜻에서이다. 서실의 이름‘애일(愛日)’은 ‘하루하루의 시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버이에게 효도한다.’는 뜻에서이다. 마루는 진정 편안하다고‘진일(眞佚)’이라 이름 지어 시를 짓고 편히 쉬면서 손님맞이 장소로 사용했다.

이곳에 명나라의 이름 높은 선비들이 쓴 좋은 글을 액자에 넣어 장식했다. 이곳 별서는 산수의 경관이 아주 좋아 벼슬에서 물러난 후 부친을 모시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마련했다. 용진강 건너편 10리쯤 되는 곳(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 모친의 묘소가 있어 성묘하기 쉽도록 경치가 아름다운 운길산 아래 터를 잡았다.

선생은 중국에 가서도 이곳 용진을 사랑하여 “아득한 천 리에서 용진의 달을, 한해에 두 곳에서 나누어 보겠네.”라고 읊었다.

▲ 말에서 내리는 하마석(노둣돌)과 말 동상.

한음의 호는 “옛날 서울을 한양(漢陽)"이라고 불렀다. 한양(漢陽)이란 한강(漢江)의 북쪽, 햇볕 드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그 반대편 한강 남쪽이 곧 한음(漢陰)이다. 즉, 한음 이덕형 선생의 본관은 바로 경기도 광주(廣州)이고, 나서 자라고, 죽어 묻힌 자리(경기도 양평)도 바로 한강(漢江) 이남(以南)이다”고 동네 어르신이 설명했다.

▲ 명재상이 심은 은행나무 2그루(상: 이력 설명, 하: 은행나무 2그루 - 보호수: 경기 남양주-10호).

지금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가 심었다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한 그루는 한음, 또 한 그루는 오성이라고 여기며 다시 만나길 기원했다.)와 말을 탈 때 오르던 돌 하나(하마석, 노둣돌)가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풍우와 세월은 모든 것을 망각으로 사라지게 하였으니 명인의 흔적이 너무나 초라했다.

 

 


염재준 고문  sarangys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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