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상록 자원봉사단(단장 이종화) 3명은 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자전거 길을 따라 인도로 걷기 위해 지난 4() 오전 9시에 팔당역에서 만났다.

팔당역 대합실에서 걷기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좌: 박인철 단원, 이동희 산악대장).
팔당역 대합실에서 걷기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좌: 박인철 단원, 이동희 산악대장).

이동희 대장은 항상 그러듯 개인 방역을 잘 지키고 안전하게 걸었으면 좋겠다. 짧게 여러 차례 걷는 것보다 한번 오랫동안 걷는 것이 건강에 훨씬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걸으면 우선 건강이 좋고, 살이 빠진다. 사고 위험이 적다. 기동성이 좋다. 돈을 번다 등 오늘도 안전에 유의해서 열심히 걷자라고 도보 건강을 예찬했다.

코로나 오미크론은 나날이 심각하지만 우수도 지나 내일이 경칩으로 봄의 전령이 다가오는 날인데 집에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포근하고 좋은 날이다. ‘도보로 건강을 챙기자는 우리 모임은 오늘도 팔당역에서 양수역까지 팔당역을 출발해 예봉산 견우와 직녀 이야기(이정표) - 남양주 다산길(1) - 봉안터널(봉안 이상촌의 전신 봉안 교회) 남한강 자전거 길 입구 세미원(열수 주교 앞) - 철새(고니) 보호구역 양수역에 도착, 15.2km, 4시간 20분을 걸었다.

양수역 전경이다.
양수역 전경이다.

 

* 오늘 투어에서 만난 명소와 유래는

갈수기여서 팔당댐 아래 물이 흐르지 않아 바위나 돌무리가 보인다. 그 속에서 철새들이 유유히 놀고 있다.
갈수기여서 팔당댐 아래 물이 흐르지 않아 바위나 돌무리가 보인다. 그 속에서 철새들이 유유히 놀고 있다.

팔당: 팔당이라는 이름은 강의 양쪽 산세가 험준하고 수려하여 팔선녀가 내려와 놀던 자리가 여덟 곳이나 있고 이후 그 자리에 여덟 개의 당()을 지어 놓았다고 해서 팔당이라 부른다. 또 이곳이 바다같이 넓은 나루가 있어 바다 나루또는 바대이라 하던 곳이 팔당으로 변했다고 하고, 또 이곳에 한강 뱃길의 안전을 비는 당집이 여덟 군데나 있어 팔당이라고 했다라고 전해진다.

봉안터널을 나오자마자 이상촌의 전신인 봉안 교회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가 있다. 
봉안터널을 나오자마자 이상촌의 전신인 봉안 교회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가 있다. 

봉안 이상촌의 전신인 봉안 교회: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라는 말은 노동의 가치를 매우 귀하게 여겼던 가나안 농군학교의 창립자인 일가 김용기 장로가 남긴 명언이다. 김용기 장로의 고향 조안면 봉안 마을에는 1914년에 설립된 봉안 교회가 있다. 김용기 장로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 낙원인 '봉안 이상촌 건설'을 꿈꾸었고 최종적으로는 조국의 국권회복을 목표로 했다. 가나안 농군학교는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의 롤 모델로서, 새마을운동의 요람인 셈이 되었다.

양절공 한확 선생의 묘역이 능내리에 있다.
양절공 한확 선생의 묘역이 능내리에 있다.

양절공 한확 선생의 묘역: 서원 부원군 한확(14031456) 선생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유(子柔)이며, 호는 간이재(簡易齋), 시호는 양절(襄節) 공으로 본관은 청주다. 조선시대 성종대왕의 외할아버지이며, 소혜왕후 인수대비의 아버지이다. 그의 누이는 명나라 성조의 비, 누이동생은 명나라 선종의 후궁이다. ‘능내라는 지명이 양절공 능으로 인해 생겼다고도 한다.

조선 시대 겸재 정선 화가가 그렸다는 '독 백탄'의 그림에 두물머리가 합수한 족자 섬이 보인다.
조선 시대 겸재 정선 화가가 그렸다는 '독 백탄'의 그림에 두물머리가 합수한 족자 섬이 보인다.

두 물머리로 알려진 족자 섬: 유유히 흐르는 한강 자락에는 작은 섬이 있다. 바로 두 물머리로 알려진 족자 섬이다. 사진 속의 그림은 조선 후기의 화가인 겸재 정선이 이 부근을 그린 독 백탄이라는 작품이다. 그림에는 예봉산과 수종사가 있는 운길산, 족자 섬이 나타나 있다. 족자 여울로도 불리는 독 백탄은 족자 섬 앞에 있는 큰 여울을 말한다.

양수대교.
양수대교.

북한강을 건너던 두 나루: 평해로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양평군 양서면으로 이어진다. 고랭이 나루는 조안면의 고랭이 마을과 양서면의 돌 떼 미 마을을 잇는 나루였으므로, 남양주 쪽에서는 고랭이 나루라고 부르고, 양평 쪽에서는 '돌 떼 미 나루'라고 불렀다. 간혹 돌 떼 미 나루를 두물머리나루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 다 양수리에 있는 나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물머리나루는 광주시의 우천리로 건너던 나루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고랭이 나루에 승합차를 실을 수 있는 나룻배도 다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때는 용진 나루보다 고랭이 나루로 통행하는 경우가 보편화 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북한강에 다리가 놓이면서 두 나루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현재 용진 나루 자리에는 양수대교가, 고랭이 나루 자리에는 6번 국도 경강로가 통과하는 신양수대교가 놓여 있다.

세미원 '열수주교'가 가라 앉아 세미원 두물머리간 이동 불가라는 안내와 정비한다는 고지가 있다.
세미원 '열수주교'가 가라 앉아 세미원 두물머리간 이동 불가라는 안내와 정비한다는 고지가 있다.

세미원(洗美苑): 팔당호가 삼면으로 둘러싸인 세미원은 물의 정원으로 노자(老子)께서 가르치신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의 진리를 배우는 곳이다. 여름철 세미원 가득히 피어나는 연꽃을 보고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참뜻을 깨우치는 곳이다. 또한 세한정의 소나무와 잣나무를 보며 공자께서 말씀했던 세한연후 지송 백(歲寒然後 知松栢)이라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보편적 가치관의 실천을 다짐하는 곳이다.

 

램블러: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9011/3856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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