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한 기자단의 역량 강화와 힐링!

광교IT기자단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가운데  20(), 강원도 강릉 일원으로 끈끈한 단합을 위해 워크숍을 다녀왔다.

▲강릉 경포해수욕장 드라마 촬영지 포토존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강릉 경포해수욕장 드라마 촬영지 포토존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번 여행은 오는 25()부터 운영이 재개되는 광교노인복지관 평생교육 대면 수업 및 행사에 앞서 기자단간의 소통과 심신을 강화하고 재충전하기 위함이다. 이날 기존 기자단은 10명 중 8명이 참석했다. 현재 면담을 마친 신입 기자 4명이 있어 이제 광교IT기자단은 14명이 된다.

이날 기자단은 오전 8시에 복지관 주차장에 모였다. 지역 후원회장이 간식과 음료수를 챙겨오고 고문님들과 기자단에서 후원금을 준비해 훈훈한 정을 나누며 차안에 먹을거리를 실었다.  김청극 단장은 봉고차로 출발전 기도로 시작하며 직접 운전을 맡아 수고해 줬다. 

 

 

먼저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정동진 정동심곡 바다부채길로 접어 들었다. 정동진 썬크루즈 리조트 앞을 지날 때는 어린 아이같이 설렘으로 가득했다. 심곡항에 도착해보니 심곡 바다부채길은 태풍피해 복구공사로 인한 공사로 폐장되어 운영이 중단돼 있었다.

바다부채길은 2020년 여름 태풍 피해로 인해 심곡 매표소를 기점으로 부채바위까지 1구간의 탐방로가 유실되거나 파손돼 폐쇄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총 2.86중 정동매표소에서 남쪽방면으로 1.86만 운영되는 등 단축운영이 장기화 돼 관광객들의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지난 2016년에 개장해 연간 60~70만명씩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는 곳이다.

▲심곡바다부채길 등대 앞에서 광교IT기자단 일행이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심곡바다부채길 등대 앞에서 광교IT기자단 일행이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긴 바다부채길을 걷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신속한 복구로 탐방객들이 안전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심곡항 주위에서 바닷 바람을 쏘이며 즐겼다.

심곡항 앞에는 풍경이 아름다운 부채길 바다향기가란 맛집이 있어 해물빈대떡과 망치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강릉의 명소이자 청춘의 거리로 변모한 강릉커피거리로 이동했다.
▲강릉의 명소이자 청춘의 거리로 변모한 강릉커피거리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은 후 강릉의 명소이자 청춘의 거리로 변모한 강릉커피거리로 이동했다. 강릉커피거리가 있는 안목해변을 걸으며 바다 구경을 하고 큰 소리를 내며 회유하는 보트를 바라보니 기분이 업 되었다. 어린 꼬마가 바지를 걷어붙이고 바다 물에 들락날락 하며 재미있어하는모습을 보니 기자단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간듯 했다. 

▲바다향, 솔향이 가득한 경포해변으로 갔다.
▲바다향, 솔향이 가득한 경포해변으로 갔다.

다시 바다향, 솔향이 가득한 경포해변으로 갔다. 거친 파도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닷 내음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탁 트인 해변의 장관은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근심, 걱정을 날려주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경포해변에서 오리바위,십리바위도 바라보고 송림병풍을 따라 산책을 하며 진한 여유로움을 가져본다. 경포는 동해안 최대 해변으로 유명한 곳이다. 시내에서 북으로 6km, 경포대에서 1km되는 곳에 동해의 창파를 가득 담고 펼쳐진 명사오리(明沙五里) 이다.

또한 이곳에는 멀리서도 한 눈에 띄고 규모가 큰 스카이베이 호텔이 있어 장관을 이루었다. 이 호텔은 싱가포르 마리나샌즈베이의 수영장을 연상시키는 인피니티 풀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며, 여름철 호캉스를 즐기려는 휴양객들로 인기인 호텔이다.

▲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태어난 집으로 보물 제165호로 지정(1963년 1월 21일)되었다.
▲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태어난 집으로 보물 제165호로 지정(1963년 1월 21일)되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강릉 오죽헌을 들렸다. 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태어난 집으로 조선 중종 때 건축되었으며, 보물 제165호로 지정(1963121)되었다.

 

 

오죽헌은 조선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이다.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몽룡실(夢龍室)이 있는 별당 건물은 우리나라 주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烏竹軒)’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신사임당 동상
▲조선에서 제일가는 여성 화가로 인정받은 신사임당의 동상이다.

신사임당은 학식과 덕망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예법을 익히고, 글공부를 하며 자랐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고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많은 문필가들이 신사임당을 두고 조선에서 제일가는 여성 화가로 인정했다.

최고의 화가로 알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고 그대로 그려 내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마당에서 움직이는 메뚜기와 나비, 탐스럽게 핀 꽃과 열매들도 잘 그렸다. 그림이 실물인 줄 알고 닭이 풀벌레를 쪼아대서 그림이 망가졌다는 일화가 있다. 풀벌레를 그린 초충도 병풍, 한자를 흘려 쓴 초서 병풍, 꽃과 나비를 그린 화훼도를 보면 신사임당의 솜씨를 확인할 수 있다.

신사임당은 모두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덕망과 글재주, 예술성은 자식에게도 이어졌다. 온화하면서도 엄격했던 어머니 신사임당은 자식들에게 그 무엇보다 사람의 도리를 강조했다. 일곱 자녀들 모두 학문이 깊고 재능이 뛰어났다.

▲조선의 대학자로 명망이 높은 율곡 이이의 동상이다.
▲조선의 대학자로 명망이 높은 율곡 이이의 동상이다.

조선의 대학자로 명망이 높은 율곡 이이는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이다. 신사임당의 훌륭한 인품은 율곡 이이가 훌륭한 학자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율곡 이이는 내게 글을 가르쳐 준 이는 어머니밖에 없다.’라는 말을 남기며 어머니를 스승으로 여겼다고 했다.

율곡 이이는 아홉 차례의 과거를 모두 장원 급제한 인재였다.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승정원을 거쳐 임금을 보필한 정치인이자 학자였다. '동호문답', '성학집요', '격몽요결'을 지었고, 외국의 침입에 맞설 군대를 양성하자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조정에 당파 싸움이 심해지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 활동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문성사는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문성1624년 인조가 율곡 이이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사물을 널리 들어 통했고 백성의 안위를 살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는 뜻이다. 해마다 이곳에서 율곡 선생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어제각은 정조대왕이 1788년 율곡 이이가 쓴 책 '격몽요결'과 어린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리글을,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학문을 찬양한 글을 새겨 보관하기 위해서 지은 집이다. 원래 문성사가 있는 자리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오죽헌 앞 배롱나무와 율곡매라 불리는 매화나무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직접 심고 가꾼 나무라고 한다. 수령이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홍매는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매년 꽃을 피운다. 이날은 앙상한 가지 끝에 새잎이 나오고 있었다.

사랑채는 주로 바깥주인이 거처하면서 외부 손님을 접대하던 곳이다. 온돌방, 툇마루, 대청마로 구성되어 있다.

▲율곡기념관에는 오죽헌의 역사와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초서 병풍 등 그 자녀들이 남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율곡기념관에는 오죽헌의 역사와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초서 병풍 등 그 자녀들이 남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율곡기념관에는 오죽헌의 역사와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 초서 병풍 등 그 자녀들이 남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향토 민속관에는 강원 지역의 옛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약방에서 사용하던 용기와 여성들이 규방에서 쓰던 물건, 사랑방의 문방구 등이 있다.

한편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뛰어난 학자로 오늘날까지 존경받는 인물이다.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16세기를 대표하는 사림(士林)이다.

이들은 35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성리학에 대한 열정과 공감대 때문에 만나자마자 의기 상통했고, 학문적으로 보완하는 관계였다. 퇴계가 새로운 시대사상인 성리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면, 율곡은 퇴계가 이룩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성리학을 조선에 토착화한 것이다.

오죽헌에서 이모저모를 살피니 우리들 자신이 수양하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차안에서 또는 길을 걸으며 서로를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이 감동이었다. 예정보다 늦게 복지관에 도착했지만 피로의 기색없이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주 취재: 안숙 부단장, 부 취재: 이은하, 김봉집 고문

 

저작권자 © 광교IT기자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