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행차길을 알기위해 램블러 가동한 실험 1편

수원시 광교노인복지관(관장 한해영) 재능 나눔 봉사단인 광교IT기자단(단장 염재준) 일행 4명은 지난 27일(목) 만석거, 노송지대, 효행공원을 답사했다.

▲ 만석거 표지석 앞에서 : 광교it기자단(유은서, 김영기, 김낭자, 안숙)

수원문화재단과 시민추진위원회가 주관하여 개최하는 제54회 수원화성문화제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9월 22일(금)~24일(일))에 앞서 시민추진위원으로 위촉돼 홍보 차원에서 답사를 했다.

먼저 장안구 송죽동에 있는 정조대왕이 조성한 만석거를 들렸다.

만석거는 1795년 정조 때 수원 화성을 쌓으면서 인근에 입주한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가뭄극복을 위해 황무지 위에 조성한 저수지이다.

이 저수지가 축조되어 쌀을 1만 석이나 더 생산하였다고 해서 만석거라 전해지고 현재는 일왕저수지 또는 교구정 방죽이라고도 부른다.

수원군읍지의 필로를 보면 정조는 현륭원 전배 길에 지지대고개에서부터 현륭원까지 18개의 표석과 11곳에 또 다른 이정표로 장승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 만석거 표석(원본은 분실, 최근에 다시 세움)이 있어 살펴보았다.

▲ 노송지대

이어 경기도 기념물 제 19호인 노송지대를 둘러봤다.

이 노송지대는 지지대고개 정상으로부터 서울~수원 간 국도변에 노송이 생장하는 5km구간을 일컫는데 조선시대 정조가 아버지(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의 나무 심는 관리에게 1,000냥을 하사하여 이곳에 소나무 500그루와 능수버들 40그루를 심게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 죽고 34주(효행기념관 인근 9주, 장안로 346번 길 인근 19주, 송정초등학교 인근 6주)의 노송만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의 소나무는 적송으로 껍질이 붉고 가지 끝에 있는 눈의 색깔도 붉어서 외래종인 리기다소나무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또 정조대왕이 참배하며 다니던 지지대고개 옆으로 그의 효성을 추모하고 본받기 위해서 조성된 효행공원을 갔다.

여기에 있는 괴목정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군집하여 경치와 그늘을 제공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에 있는 다리로 현재 설치되어 있는 표석은 복제본이고 원본은 수원박물관에 있다.

마지막으로 지지대 쉼터에 차를 세우고 수원시와 의왕시 경계에 있는 장안구 파장동 산47-2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지지대비를 들렸다.

▲ 지지대비 답사

지지대비가 있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전에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비(碑) 표지석이 있다.

지지대비는 조선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7년(1807) 화성 어사 신현의 건의로 세워진 높이 150cm, 너비 60cm 규모의 비이다.

조선 정조는 생부인 사도세자 능인 화성의 현륭원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능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으레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능을 뒤돌아보며 이곳을 떠나기를 아쉬워하였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지(遲)자 두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비의 비문은 홍문관제학 서영보가 짓고, 윤사국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 유수 홍명호가 전액을 썼다. 비운의 생애를 마친 아버지에 대한 정조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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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 : 김영기, 유은서 부장, 김낭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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