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동네 -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유래

염재준 단장l승인2017.12.08l수정2017.12.0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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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는 백제시대에 노지라 하였다가 무진 군으로 고쳤고 757년(신라경덕왕 16)부터 무주라 부르게 되었다.
892년 견훤이 이곳에 후백제를 세우다 고려시대 태조23년(940년)에 무주를 광주로 고치고 이후 해양 현 – 익주 – 광주 목 – 화평 부 – 무진주 – 광주 목 등으로 지명이 자주 바뀌었다.

▲ 짚봉산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전경

조선시대 1430년(세종 12)광주목이 무진 군으로, 1451년 다시 광주 목으로, 1489년 광산 현으로, 1896년(고종 33) 광주군에 전라남도 관찰부를 두었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광주군은 15면 152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이 때 서구지역은 극락 면과 서창 면에 속하게 되어 1930년 서구지역인 극락 면 송정이 화정리로 개칭, 1935년 신기리 와 내방리가 광주읍에 편입되었다.

해방 후인 1949년 광주부가 광주시로 개칭, 1955년 광산 군의 서방 면, 효지면, 극락 면, 석곡 면 일부가 광주시에 편입으로 광주시에 4개 출장소가 개설. 서구 지역은 유림출장소 관할에 속하다. 1973년 구제 실시에 따라 중, 동, 북부 출장소가 통합되어 동구로, 남, 서, 지산출장소가 통합되어 서구가 되고, 서구는 46개 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1979년 서구는 월산 2동을 월산 2, 4동, 상무동을 쌍촌, 화내 동으로 나누었고, 1980년 북구가 신설되자 서구 관할의 지산 출장소가 유, 누문, 북, 임, 동운, 소태동을 통합하여 북구로 편입시키고, 동구 관할의 양림, 방림 1동을 서구로 편입하였다. 1983년 서구관할의 화내동이 화정1,2동으로, 농성동이 농성1,2동으로 분동, 1985년 월산5동, 주월2동, 백운 2동이 분동 되었고, 1990년에는 화정2동이 분동되어 화정3동이 신설, 방림2동에서 봉선동을 분동하였다. 1995년 남구가 분리되면서 서구 관할의 14개 동이 남구에 이관, 광산구 서창동을 서구로 편입하였다. 1999년 양동1,2동을 양동으로 통합, 2001년에 서창동이 서창동과 금호, 풍암동으로 분동 되어 서구는 17개 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 광주 풍암 저수지

광주를 빛의 고을, 풍류의 고장, 멋과 한의 고장, 또는 무등(평등)으로 가는 광주라고 말한다. 그중 한의 고장에 관하여 내력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과 관계가 있고, 김장군의 시호가 충장로의 거리 이름이 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고 충청도 홍산에서 일어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러 가다가 난이 평정되어 회군하는 도중 무고로 인하여 역도로 몰리고 암군 선조의 심한 고문 끝에 30세에 옥사하였다.

65년 만에 관작이 복구되었고 정조 때 좌찬성이 가증되어 ‘충장’이란 시호가 내려졌으며 장군이 태어난 마을은 ‘충효리’로 하도록 사명(賜名)되었다.

무등산에 묻힌 김충장공의 한은 다시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진다. 시민군과 계엄군의 충돌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때 사망한 영령들은 무등산 기슭 망월동 묘역에 잠들어 있다.

‘무등’은 일등도 이등도 아닌 불법(佛法) 무등 의 경지를 말한다. “웅장 하도다, 무등산이여! 잘 길러내어 기남(奇男)을 낳았네.”하고 다산 정약용 선생이 노래하였던 무등산의 정기, 무등의 남아들은 당시 폭도로 매도되었고, 광주 시민의 명예회복은 지연되어 충장공의 한에 이어 광주 시민의 한이 수십 년간이나 무등산 기슭을 맴돌고 있는 곳이다.

광주광역시 서구에는 금당산, 개금산, 송학산의 자연풍광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다양한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멋있는 풍경이 있으니 그것을 서구 8경이라고 한다. <광주 서구 8경; 1경 – 만귀정, 2경 – 금당산, 3경 – 풍암호수, 4경 – 서창 들 낙조, 5경 – 용두동 지석 묘, 6경 – 양동시장, 7경 – 운천사 마애여래좌상, 8경 – 5.18 기념공원>

▲ 광주 운암저수지의 야경 모습

한국지명유래 집에 실린 글에는 금당산(304M)은 광주광역시의 남구 효덕동 관할 진월동과 서구 풍암동 경계에 있는 산이다.
무등산에서 분적 산을 거쳐 북서쪽으로 내려 선 능선이 1번 국도를 거쳐 오른 산이다.
금당(金堂; 절의 본당 – 대웅전)은 불교에서 본존불을 모신 집을 말한다. 산 바로 남쪽 밑으로 광주에서 남평 가는 길이 있고 옥천사(玉泉寺)가 위치한다. 금당 산은 옥녀봉과 함께 풍수지리설에서 여성을 지칭하며 음기가 드세다고 한다. 옥천사는 이런 음기를 누르기 위해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금당’ 지명 자체가 음기를 잠재우기 위해 만든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 화정동(花亭洞); "화담사는 꽃이 많아 화담이었으나 화동 정씨 사당(우)과 소나무가 울창한 정자 몇 개가 있어 송정(松亭)리가 어우러져 화정동이 됐다.
하동정씨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보성군수를 역임한 ‘정화’가 살기 시작해서부터 1735년(영조 11) 경사에 능하며 예법을 지키고 청렴결백한 문절공(정수충)의 영정을 모시는 영당에서 출발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염재준 단장  sarangys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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