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블러로 보는 역사 이야기

광교노인복지관 역사탐방반 수강생 4명은 강사 김희태 선생님의 인솔 하에 서울 삼전도비와 석촌동 고분군을 탐방했다.

10시에 잠실 3번 출구에서 만나 삼전도비로 이동한 일행은 강사님의 설명을 듣고 질문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주 수요일 임진왜란 이후 국제정세, 병자호란이 있기 전까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청의 칭제와 병자호란, 삼전도비와 병자호란, 굴욕을 자초한 인조, 삼전도비의 내용과 세워진 경위, 삼전도비가 파묻히고 세워지기를 반복한 이유 등에 대한 강의를 받았다. 오늘은 현장에 직접 나와 탐방을 하며 이해도를 높였다.

아래 링크를 누르면 램블러로 이동됩니다.

삼전도비는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청 태종에게 항복한 사실을 기록한 비로, 우리나라에는 유일하게 비신의 앞뒷면에 몽골, 만주, 한자 이렇게 3개국 문자가 새겨져 있다. 현재 비신을 받치고 있는 거북받침은 근래 비를 다시 세울 때 새로 만든 것이며, 뒤에 보이는 거북받침이 원래의 것이다.

▲ 서울 삼전도비

이 비는 원래 석촌호(石村湖) 주변에 세워졌으나, 그 치욕적인 의미 때문에 1895년(고종 32)에 매몰하였던 것을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일본에 의해 다시 세워지고, 1956년 당시 문교부에서 국치의 기록이라 해서 다시 땅 속에 묻었다가, 1963년에 다시 세우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가 2010년 4월 고증을 거쳐 최초의 위치인 석촌호수 서호 언덕으로 옮겨졌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삼전도비는 수치스런 역사의 기록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조차 우리의 역사로 인정하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길을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 한성시대에 조성된 고분군으로,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까지만 하더라도 80여 기 이상의 백제 무덤들이 남아 있었으나, 1970년대 초 서울시 전역에 불어 닥친 개발 붐과 함께 무덤의 대부분이 훼손되는 위기를 겪는다.

다행히 1974년 이루어진 문화재 조사를 통해 계단식돌무지무덤(3·4호) 2기와 봉토분 1기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이후 1983∼1984년 서울대학교 발굴단의 발굴조사, 그리고 연이어 1986∼1987년에 실시된 백제 고분공원 조성 공사에 따른 발굴조사를 통해 움무덤,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백제 초기의 무덤들이 발견되면서 고분군 성격의 전모가 밝혀짐과 동시에 개발에 의한 파괴의 위기를 넘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저작권자 © 광교IT기자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