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사지.현오국사탑비 답사

김영기 단장l승인2020.06.22l수정2020.06.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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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봉사지 위치

지난 21일(일) 무더위 속에서 수원시와 용인시의 경계인 광교산 동남쪽 해발 260m의 구릉에 자리하고 있는 서봉사지(瑞峰寺址)를 답사했다.

용인 신봉동 음식문화거리를 지나 끝까지 올라가면 광교산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여기서 서봉사지까지는 대략 600m 거리이며 10분쯤 걸려 서봉사지에 도착했다.

▲ 서봉사지 사진출처: Encyves Wiki

서봉사는 광교산 중턱에 있었던 사찰이다.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1185(고려 명종 15)년에 세워진 「서봉사현오국사탑비(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보물제9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용인의 옛절터 서봉사지

절터는 자연 경사면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6단의 석축 계단을 조성하여 건물을 배치한 산지가람이다.

절터의 전체 남북 길이는 130m, 동서 폭은 90m이다.

현재 절터 대부분은 폐허 상태로 탑재와 부도 및 석등의 부재들이 널려 있고, 현오국사비각과 탑지 부분만 부분 정비된 상태이다.

▲ 서봉사지에서 발굴된 유물(고려시대)

조선시대 1407(태종 7)년 나라의 복을 기원하는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근왕군이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주둔하였다가 왜군과 전투를 펼쳤다.

1637년 병자호란 때에는 김준룡 장군이 청나라 군대와 싸워 승전하였다.

그 과정에서 절의 일부가 화재로 불에 타기도 하였지만 이후 재건되어 조선 후기까지도 유지되었다.

▲ 서봉사지에서 발굴된 유물(조선시대)

서봉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역시 분명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현오국사탑비가 폐사된 절터에서 발견되어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이곳이 서봉사임을 알게 된 것은 현오국사탑비의 비각을 건립하는 공사 중 명문와편(銘文瓦片)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수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를 통해서 동원, 중원, 서원, 등 3개의 각각 다른 건물군으로 구분된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용인시에서는 먼저 중원 일대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그 기초자료를 확보하고자 (재)한백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하여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중원은 계단식으로 6단의 대지를 조성하여 건물을 축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위로부터 1단에서 3단까지는 조선시대 건물지가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건물지 하부에서는 고려시대 건물지 흔적도 일부 확인되었다. 그 아래 4단에서 6단까지는 고려시대 건물지가 출토되었다. 이곳 고려시대 건물지는 수해로 대부분 사라지고 이후 조선시대에 1단과 3단 지역을 중심으로 재건되었던 것도 밝혀졌다. 밭굴조사 과정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서봉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 무기들도 출토되어 호국사찰의 위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 10월 현재 절터는 문화재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용인시에서 2022년까지 서봉사지 보존·정비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 서봉사현오국사탑비(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龍仁 瑞鳳寺址 玄悟國師塔碑)는 고려의 승려인 현오국사(玄悟國師)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기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서봉사지에 있으며, 고려 명종 15년(1185년)에 세워졌다. 탑비는 보통 부도와 함께 건립되는데 현재 부도는 흔적도 없고 이 탑비만 남아 있다.

▲ 보물 제9호 현오국사탑비

 

명종 15년(1185)에 세워진 이 탑비는 현오국사(玄悟國師)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고자 만들어졌다.

화강암의 비 받침위에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비몸돌이 놓여있는 단촐한 모습이다.

비 받침부분의 윗면은 4변을 비스듬히 잘라내었고, 비문이 새겨지는 비몸에도 윗부분의 양 귀끝을 사선으로 접듯이 잘라서 마무리하였다.

▲ 보물 제9호 현오국사탑비(1963년1월 21일 지정)

 

 

 

비문에 의하면, 현오국사는 15세에 불일사(佛日寺)에서 승려가 된 후 부석사(浮石寺)의 주지를 거쳐 명종 8년(1178) 5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이 크게 슬퍼하여 국사(國師)로 삼고 시호를 ‘현오(玄悟)’라 한 뒤 동림산 기슭에서 화장하였다. 그 외에도 글을 지은 이와 건립연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형이 간략한 고려 후기 석비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김영기 단장  krss43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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