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9일(토) 오후 1시에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에 있는 묘적사(妙寂寺) 천년 사찰을 다녀왔다.

묘적사는 경의선 덕소역에서 하차 후에 60번 마을버스를 승차해서 월문 방향으로 20여 분을 타고 묘적사 입구에서 하차해 도보로 1.3km를 걷는다. 묘적사(妙寂寺)는 오랜 불교문화역사를 간직한 사찰이지만 이 절의 창건 시기를 알 수 있는 유물은 거의 없다.

▲ 대웅전 앞에서 음력 4월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행사를 준비하는 모습.

묘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고려 때의 발자취는 전하지 않는다. 세종 때 학열(學悅)이 중창하였고, 1486년(성종 17)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절 이름이 나온다.

현재 있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한 석굴 나한전, 산령 각, 관음전, 마하 선실, 요사채 그리고 별채가 있다. 대웅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와 산신·칠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9호로 지정된 팔각 칠층석탑(정중탑)이 유명하다.

▲ 팔각 칠층 석탑(정중 탑)의 모습.

이 탑은 월정사팔각구층석탑·수종사(水鐘寺)오층석탑과 양식이 비슷하여 조선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추녀는 모서리가 위로 치켜 올려져 있고 끝에는 풍같이 달린 작은 구멍이 있다. 1층부터 5층까지는 옥개석과 탑신이 별도의 돌로 되어있으나 6층과 7층은 하나의 돌을 합해 만들었다. 한편 3층과 4층 사이의 체감률이 부자연스럽고 절에서 동쪽으로 30m가량 되는 곳에 탑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본래 7층은 아니고 대략 11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 석굴 나한전.

나한전은 석굴로서 안에 석가모니불 좌상과 십육나한 상이 있다. 대웅전과 같이 지어진 요사채의 기둥은 별로 손질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여 이채롭다.

▲ 산령각.

조선 중기에는 경내에 민간인의 무덤이 들어설 정도로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김교헌(金敎憲)이 쓴 《묘적사 산신각 창건 기》에 따르면, 1895년(고종 32)까지는 폐사로 남아 있었다. 1895년에 규오(圭旿)가 산신각을 중건하고, 예로부터 전해온 산왕신상(山王神像)을 모셨다. 1969년 화재로 전각이 불에 탔고, 1971년 자신(慈信)이 요사채를 중건하였다.

최근 들어서도 이러한 묘적사의 성격을 이해한 박정희 대통령이 과거와 같은 호국 교육장으로서 복원을 하고자 했으나 대통령의 죽음으로 중지되었다고 한다.

▲ 연못에 부처님 상이 있다.

전설 설화로 묘적사는 국왕 직속의 비밀 요원들이 군사훈련을 하던 곳으로, 국왕이 필요한 사람을 뽑아 승려로 출가하게 한 뒤 이곳에 머물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이 승군을 훈련하는 장소였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뒤에는 승려들이 무과(武科) 시험을 준비하는 훈련장이었다. 특히 절 앞 동쪽 공터에서 화살촉이 자주 발굴되어 이곳이 당시 활터였음을 추정한다.

 

저작권자 © 광교IT기자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